- 많은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운동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일정한 규모로 커져 정치적으로 명확하게 요구를 하게 되면 정치도 더는 이런 흐름을 무시하지 못하고, 자기 알리바이를 위해서라도 무언가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 나는 '주류에서 벗어나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을 일찍부터 나만의 개성으로 삼았다. 이건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실제로 아주 편했기 때문이다.
- 나는 단점이 없는 물질은 없고, 결코 포장 용기나 포장 물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상품과 에너지, 심지어 서비스까지 모든 형태의 소비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 내가 주목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소비할 경제적 여력이 있고 표면적으로 보면 많은 영역에서 낭비가 가능할 만큼 상품 값이 무척 싸고, 그로써 기존의 소비 행태를 바꿀 만한 매력이 적다는 점이었다.
- 나는 지난 수년 동안 풍요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우리가 풍요와 낭비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아울러 풍요와 시간 부족, 스트레스, 분주함 사이의 연결 고리도 끊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 부족과 그 여파에 대해선 나 자신도 너무 잘 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하기,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오늘 하루 나 자신을 위해서는 단 5분도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집에 가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 5분 동안 옷 쇼핑하기, 스트레스 홍수 속에서 잊어버린 무언가를 찾으러 가려고 얼른 차를 빼는 행동들이다. 이 모든 것은 진정한 풍요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종양이 아닐까? 그 뒤엔 정말 진정한 인간적 욕구가 숨어 있을까? 아니면 그건 우리의 삶에서 정말 주요한 것을 잊게 만드는 대리 만족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있을까? '진정한 풍요'에 이르려면 우리는 이런 연결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 우리는 플라스틱 실험을 시작할 때부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나오거나, 어떤 상품이 현실에서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는지 손쉽게 판가름할 수 있을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나는 키친타월과 메이크업 패드를 쇼핑 목록에서 아예 삭제한 뒤 다시 빨아서 쓸 수 있는 헝겊이나 천으로 대체했다.
- 온갖 형태의 물질을 그렇게 흥청망청 낭비하는 것은 결코 '소비자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우유나 음료수를 단 한 번만 쓰고 버리는 포장 용기에 담아서 팔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누군가 어느 순간 그렇게 팔아 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뿐이다. 껍질을 벗긴 과일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파는 것도 분명 소비자들의 요구 때문이 아니다. 나는 우리 할머니를 비롯해 그 세대의 다른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공짜 비닐봉지가 고객들의 필요에 따라 점점 많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어느 날 우리 앞에 그냥 주어졌다.
우리 사회가 현재 엄청난 규모의 낭비 사회로 바뀐 데에는 개인의 결정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이 연관되어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재사용 시스템을 촉진하고 고객을 일일이 응대하려면 마트마다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거대 유통 업체들의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회용 포장 시스템을 활성화하면 상품을 판매하고 나면 업체들은 더 이상 들여야 할 비용이 없다. 포장 산업도 일회용 포장 시스템의 꾸준한 발전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재사용 시스템이 마트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소비자의 셀프서비스 쇼핑이 점점 일상화된 데에는 포장용품의 낭비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업체들이 늘 앞세우는 고객들의 요구와 위생 규정은 위선적인 변명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 아니라 결과임은 분명하다. 해를 거듭하면서 '부정적인 학습 효과' 같은 것이 일어났다. 습관과 편리성이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그와 함께 대형 유통 업체와 산업체의 이해관계, 법 규정을 제대로 갖추기 못한 것 때문에 지금까지 최소한 오스트리아에서만큼은 잘 돌아갔던 재사용 시스템이 차츰 망가졌다.
- '장난감 낭비'는 과잉 소비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를 통해 우리가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낭비와 과잉에 젖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장난감의 과잉과 나쁜 품질로 인해 아이들은 장난감을 조심해서 다루지 않게 되었고, 그로써 많은 장난감이 빨리 망가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우리다. 다시 말해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습성에 젖게 하고, 그래서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미래의 어른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 낭비를 줄이려는 시들은 그 자체에 한정 지어서는 안 되고 전체적인 연관성 속에서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 "세상은 그냥 바뀌는 게 아냐. 늘 소수의 몇 사람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변화가 시작되었어. 그런 행동들이 없었다면 인간 역사에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대개 처음엔 비웃음을 사. 당신들 몇 사람이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이런 식이지.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꿋꿋하게 자기 뜻대로 밀고 나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야. 예를 들어 엄마가 어렸을 때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았어. 언젠가는 모두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 하지만 너희들 외할아버지는 그걸 아주 조용하게 생각하셨어. 그래서 폐지로 새 종이를 만들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베어져야 하는지 설명하시곤 했어. 그땐 그렇게 행동하는 게 퍽 이상해 보였지만, 요즘은 어떠니?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잖니. 무슨 말이지 알아듣겠니?"
- 시선을 끄는 수많은 상품과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유혹이 내 속에서 실제적인 필요와는 전혀 상관없이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건 무턱대고 '갖고 싶은' 욕망에 가까웠다. 나는 이 현상을 나중에 우리 아이들한테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쇼핑센터가 번화한 상점가를 지날 때였다. 아이들은 그 옛날 내가 미국의 쇼핑몰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물건들에 눈이 돌아갔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신기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거의 1분 간격으로 물었다.
"엄마 우리 저거 사면 안돼? 나 저거 갖고 싶어."
이런 상황은 아이들과 함께 쇼핑하는 것을 내게 늘 새로운 시험이자 도전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 경험은 플라스틱 실험 훨씬 전부터 실질적인 필요성과 광고의 영향, 풍요와 과잉의 차이를 깊이 생각할 계기가 되기는 했다. 어쨌든 나는 시간이 가면서 쇼핑센터나 다른 비슷한 장소에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을 되도록 피했다. 물론 나 자신도 그런 곳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군침을 돌게 만드는 다양한 상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구매욕은 강하게 자극받았고, 그로써 애초에 필요 없거나 산 뒤에 곡 후회하게 되는 물건을 다시 사고 있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 세계적으로 생산된 식품의 3분의 1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었다. 유럽연합에서는 1인당 1년에 평균 173킬로그램의 식품이 쓰레기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매년 1100만 톤의 식품이 오스트리아에서는 약 80만 톤이 버려졌다. 주된 원인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소비자들의 계획적이지 않은 장보기 습관, 겉으로 보기에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식품을 버리는 관행, 그리고 유통 기한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참고로 유통기한은 생산자가 제품의 안전성을 책임지고 보증하는 기간일 뿐 상품의 실질적인 보관 기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이런 시스템과 구조를 깨뜨리기 힘든 이유는 여럿이다. 그중에는 내가 보기에 다음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은 원래 '습관의 동물이자 무리 동물'이고, 진화적으로 편한 것을 좇도록 설정되어 있어 변화 자체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낭비 사회의 직접적인 결과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한 가지 요인이다. 쓰레기 폐기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국제적으로 재활용 비율은 꽤 높게 나타나고, 공장 매연과 오폐수는 여과 과정을 거쳐 배출되고, 미세먼지는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기후 위기와 종의 멸종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고, 실제로 나쁜 결과는 주로 다른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낭비 경제를 끝낼 적기라는 사실을 여전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시스템으로 경제적 이득을 보는 사람이 너무 많고 이들은 지속 가능한 경제로 나아가는 필수적이고 진지한 발걸음을 가로막고 있다.
- 플라스틱 안 쓰기 프로젝트 초기부터 나는 줄곧 생산 업체들의 '의도적 노후화'에 주목해 왔다. 주로 기술 제품에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제품 수명이 짧아지거나 성능이 떨어지도록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일정한 장치를 기기 안에 설치해 놓는다는 말이다. 이 현상은 프린트기에서 맨 먼저 발견되었다. 프린터기 경우, 일정한 수만큼 출력하고 나면 미리 설치해 놓은 칩을 통해 시스템 기능이 중단되면서 소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새것을 다시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현상과 관련해서는 논쟁이 분분하다. 업체 쪽에서는 당연히 그런 수단이 있다는 의심을 단호하게 부인한다. 사실 자연적으로 기능이 떨어지는 시점을 정확히 언급하는 건 어렵다. 다만 비싼 스마트폰에서 충전기나 그 밖의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바꿀 수 없게 만들었다면 거기에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새 제품을 판매하는 것 말고 어떤 다른 이해관계가 숨어 있을까? 나는 도저히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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