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62

그냥 하지 말라(송길영 저 / 출판사 북스톤) - 예전에는 집에서는 쉬고 직장에서는 일을 하고 이동하는 과정은 고단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능을 나눈 거죠.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집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자동차에서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걸 넘어 다양한 형태의 일상을 살 수 있는 정도까지 우리의 삶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예 새로운 것은 아니죠. 디지털 노마드라는 표현은 이미 존재했고, 제가 본 데이터에도 2015년부터 삶의 유동성이 관찰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때에는 항구적인 삶의 터전을 이동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리적 공간인 '일터'가 고정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재택근무를 하고 메타버스까지 등장하면서 일하는 장소가 굳이 어느 한 곳이어야 .. 2022. 6. 29.
올리브 키터리지(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 / 출판사 문학동네) - 약국이 있던 자리를 지나친다. 그 자리에는 이제 거대한 자동 유리 문이 달린 대형 드러그 스토어 체인점이 들어서 있다. 옛 약국과 슈퍼마켓이 있던 자리는 물론, 헨리와 데니즈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커다란 쓰레기통 곁에서 한담을 나누던 주차장 자리까지 전부 차지해버린 거대한 드러그 스토어에는 약만 파는 게 아니고 종이 타월과 각종 쓰레기봉투까지, 없는 게 없다. 접시와 머그잔, 주걱, 고양이 사료까지 살 수 있다. 옆쪽에 있던 나무들은 모두 잘려나가고 그 자리는 주차장이 되었다. 사람은 익숙해지지 않으면서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지, 그는 생각한다. - "경험이란 그런 거죠. 삶의 우선순위가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 후론 제 가족에게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요. 가.. 2022. 5. 4.
마이너 필링스(캐시 박 홍 저 / 출판사 마티) - 아무 생각 없는 백인에게 인종 문제를 참을성 있게 가르치기란 정말 고되고 피곤하다. 내가 가진 설득의 능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한다.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수다로 끝날 수가 없다. 그것은 존재론적이다. 그것은 남에게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아픔을 느끼는지, 나의 현실이 그들의 현실과 왜 별개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아니, 실상은 그보다도 훨씬 더 까다롭다. 왜냐하면 서구의 역사, 정치, 문학, 대중문화가 죄다 저들의 것이고, 그것들이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수다로 끝날 수가 없다. 그것은 존재론적이다. 그것은 남에게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아픔을 느끼는지, 나의 현실이 그들의 현실과 왜 별개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아니,.. 2022. 1. 28.
동급생 (프레드 울만 저 / 출판사 열린책들) -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있는 소년들은 때때로 천진무구함을 심신의 빛나는 순결함, 완전하고 이타적인 헌신을 향한 열정적인 충동과 결부시킨다. 그 단계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강렬함과 독특함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 정치는 어른인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수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2022. 1. 17.
다정소감 (김혼비 저 / 출판사 안온북스) - 유독 여행 분야에는 '그것 오답입니다!'라고 정답지를 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탄의 대상은 단지 중년 단체와 여행객만이 아니었다. 성별 나이 구분 없이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A가 일컬은 '그런 사람들'은, "수박 겉핥기 식 패키지여행이나 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여행까지 와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요즘 애들" "인터넷 정보만 믿고 현지인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관광객용 식당에 뭣도 모르고 줄 선 사람들" "역사적 명소에는 관심도 없고 쇼핑만 하다 가는 애들"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여행기 곳곳에 등장했다. 아니, 그러면 좀 안 되나요. 어차피 여행지에서 몇 달 살 것도 아니라면 누구도 수박 속까지 다 파먹을 수 없는데, 그냥 수박 겉만 즐겁게 핥다가 오면 안 되나. SNS를 .. 2022. 1. 16.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 저 / 출판사 더 숲) - 삶은 때로 도둑보다 더한 것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때는 자신이 낯선 별에 불시착한 갈 곳 없는 영혼처럼 느껴진다. 산티아고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모험을 떠나지 못하게 자신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소명을 사랑하면 필시 세상도 사랑하게 된다. -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 2022.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