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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혼자서도 별인 너에게 (나태주 저 / 출판사 서울문화사)

by hyeranKIM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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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별인 너에게

늘 자연의 언어로 우리 마음에 깊은 위안을 주는 시인 나태주가 이번에는 자기 전에 읽는 시집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www.aladin.co.kr

 

- 얘야 왜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네 둘레를 좀 보아.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좀 보고 옆도 좀 보아. 너보다 못한 사람 많고 너를 부러워하는 사람들 오히려 많아. 힘을 내야지. 모든 걸 좋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생각해야지. 오늘보다는 내일이 좋을 거라고 믿어야지. 혹시 네가 너무 꽃이기만을 바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 네가 한사코 밝음이려고만 발버둥 친 건 아닌지 걱정이 돼. 때로 우리는 어둠이 필요해. 휴식이 필요하고 침묵이 필요해. 밤하늘의 별들을 좀 보아라. 무엇이 별들을 반짝이게 하더냐? 어둠이야. 어둠이 있기에 별들이 반짝이는 거야. 어둠을 믿고 별들이 웃고 있는 거야.

오히려 별들의 배경은 어둠이고 별들의 집은 어둠이고 별들의 운동장은 어둠이야. 별들은 차라리 어둠이 고마운 거야. 너의 어둠을 사랑하고 너의 어둠을 아껴라. 그러면 조금씩 좋아질 거야. 조금씩 세상 살맛이 돌아오고 너도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할 거야.

나는 믿는다. 네가 세상의 꽃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별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야. 얘야, 네 마음의 별을 믿어라. 네 마음의 힘을 믿어라. 네 마음의 사랑을 믿고 네 마음의 그리움을 믿어라. 그래서 더욱 빛나는 아름다운 별이 되어라.

그리하여 새롭게 아침을 맞고 새날을 맞이해라. 다시 한번 한낮의 눈부신 꽃이 되어 웃어라. 그러한 너를 위해 나는 밤을 새워 무릎 꿇고 기도하마. 울면서 기도하마. 그것만이 나의 능력이다. 얘야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면 내가 못 견딜 것만 같구나. 얘야, 우리 함께 가자. 멀리 있어도 함께 가고 가까이 있어도 함께 가자. 누군가 함께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더 마음이 놓이지 않겠니. 어두운 밤길 같은 인생길 함께 가면서 서로가 서로의 숨결을 듣고 서로의 마음을 믿어보자. 그러면서 힘을 내자.

 

- 유리창

이제

떠나갈 것은 떠나게 하고

남을 것은 남게 하자

 

혼자서 맞이하는 저녁과

혼자서 바라보는 들판을

두려워하지 말자

 

아, 그렇다

할 수만 있다면

나뭇잎 떨어진 빈 나뭇가지에

까마귀 한 마리라도 불러

가슴속에 기르자

 

이제

지나온 그림자를 지우지 못해 안달하지도 말고

다가올 날의 해짧음을 아쉬워하지도 말자.

 

- 가을이 와

가을이 와 나뭇잎 떨어지면

나무 아래 나는

낙엽 부자

 

가을이 와 먹구름 몰리면

하늘 아래 나는

구름 부자

 

가을이 와 찬바람 불어오면

빈 들판에 나는

바람 부자

 

부러울 것 없네

가진 것 없어도

가난할 것 없네.

 

- 가질 수 없어

가질 수 없어

갖지 않는 것은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질 수 있어도

갖지 않는 것이 정말로

갖지 않는 것이다.

 

- 인생 1

화창한 날씨만 믿고

가벼운 옷차림과 신발로 길을 나섰지요

향기로운 바람 지저귀는 새소리 따라

오솔길을 걸었지요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길

막판에 그만 소낙비를 만났지 뭡니까

 

하지만 나는 소낙비를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날씨 탓을 하며 날씨한테 속았노라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좋았노라 그마저도 아름다운 하루였노라

말하고 싶어요

소낙비 함께 옷과 신발에 묻어온

숲속의 바람과 새소리

 

그것도 소중한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었으니까요.

 

- 돌아오는 길

점심 모임을 갖고 돌아오면서

짬짬이 시간

돌아오는 길에 들러 본 집이 좋았고

만난 사람은 더 좋았다

 

혼자서 오래 산 사람

오래 살았지만 외로움을 잘 챙겼고

그러므로 따뜻함을 잃지 않은 사람

마주 앉아 마신 향기로운 차가 좋았고

서로 웃으며 나눈 이야기는 더욱 좋았다

 

우리네 일생도 그렇게

끝자락이 더 좋았다고 향기로웠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 못다 이룬 꿈을 아쉬워하지 말자

오늘도 아무런 일 없이

하루해가 조용히 물러간다

산은 산대로 여전하고 푸르고 우뚝하고

강물은 지구 밖으로 빠져나갈 듯

아픈 몸부림 하나로 흘러 흘러만 가고

저녁노을은 또 한차례 불끈 주황빛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오늘 하루 감사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으냐!

어떤 친구는 내 나이 무렵에 세상을 스스로 버렸고

심지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첫울음 함께

세상을 버린 어린 아기도 있다

오늘 하루 얼마나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느냐!

그것을 곰곰이 짚어보아야 한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것을

떠올려보아야 한다

 

간절히 만나고 싶었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사람을 안타까워하지 말기로 하자

오늘 비록 못다 이룬 꿈이 있다 하더라도

그 꿈을 아쉬워하지 말기로 하자

오늘은 오늘로서 가득하고 내일은 내일로서

또한 눈부실 것이 아닌가 말이다.

 

- 어쩌다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가고 싶었는데

아는 듯 모르는 듯

잊혀지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대 가슴에 못을 치고

나의 가슴에 흉터를 남기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의 고집과 옹졸

나의 고뇌와 슬픔

나의 고독과 독선

그것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과연 좋은 것이었던가

사는 듯 마는 듯 살다 가고 싶었는데

웃는 듯 마는 듯 웃다 가고 싶었는데

그대 가슴에 자국을 남기고

나의 가슴에 후회를 남기고

모난 돌처럼 모난 돌처럼

혼자 쓸쓸히.

 

- 기도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 풍경

어느 곳에 가든지

공기에게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한다

나 여기 있어도 좋을까요?

머리 조아려 공손히 인사를 드려야 한다

 

어느 곳에 가든지

나무나 풀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나요?

궁금했는데 그쪽도 잘들 계셨는지요?

 

그리하여 풍경이 우리를 한 가족으로 받아줄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편안하게 숨도 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사랑은 그런 것이다

푸른 산을 보고서도 울컥했다

붉은 꽃을 만나서도 지릿했다

산이 고개를 가슴속으로 디미는 것 같아서

꽃이 바늘 되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서

 

남들이 볼 때 하찮은 일인데도 그는

한사코 그 일에 목을 매고 살았다

한 번뿐인 목숨 잠시뿐인

젊은 시절을 아낌없이 던졌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궤도 수정이 잘

되지 않는 그 무엇이다

포기할 수 없기에 눈물겨운 그 무엇이다.

 

- 별 2

우리는 한 사람씩 우주공간을 흐르는 별이다. 머언 하늘길을 떠돌다 길을 잘못 들어 여기 이렇게 와 있는 별들이다.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로 그리워하고 소망했기에 여기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 별들이다.

 

그러니 너와 나는 기적의 별들이 아닐 수 없다. 하늘 길가는 별들은 다만 반짝일 뿐 서러운 마음 외로운 마음을 가지지 않는 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순간순간 외로워하고 서러워할 줄 아는 별들이다. 안타까워할 줄도 아는 별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별들이겠는가!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잠시 그렇게 머물다 가기 바란다. 오직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내 앞에 잠시 그렇게 있다가 가기 바란다. 굳이 재촉하지 않아도 이별의 시간은 빠르게 오고 우리는 그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그리하여 너는 너의 하늘길을 가야 하고 나는 또 나ㅣ 하늘길을 열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다시 만난다는 기약은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쩌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앞으로도 오래 외롭고 서럽고 안타깝기까지 할 것이다. 부디 너 오늘 우리가 이 자리 이렇게 지극히 정답게 아름답게 만났던 일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기억한다면 앞으로도 많은 날 외롭고 서럽고 안타까운 순간에도 그 외로움과 서러움과 안타까움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나도 하늘길 흐르다가 멀리 아주 멀리 반짝이는 별 하나 찾아낸다면 그것이 진정 너의 별인 줄 알겠다. 나의 생각과 그리움이 머물러 그 별이 더욱 밝은 빛으로 반짝일 때 너도 나를 알아보고 나를 향해 웃음 짓는 것이라 여기겠다. 앞으로도 우리 오래도록 반짝이면서 외로워하기도 하고 서러워하기도 하자.

 

오늘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고 난다면 어디서 또 다시 만난다 하겠는가? 잡았던 손 뿌리치고 나면 언제 또 그 손을 잡을 날 있다 하겠는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어여쁜 너. 오직 기적의 별인 너. 많이 반짝이는 너의 별르 데리고 이제는 너의 길을 가라. 나도 나의 길을 가련다. 아이야, 오늘은 여기서 안녕히! 나에게도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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