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스, 메르스, 코비드 19 등의 질환은 모두 박쥐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박쥐는 전 세계 포유류의 약 25%를 차지한다. 동물의 수명은 대체로 몸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일반적 통설을 감안하면 박쥐는 비슷한 크기의 쥐처럼 18개월 정도 살아야 하지만 수명이 근 40년이나 된다는 것부터 매우 독특한 생명체다.
설치류인 쥐나 조류인 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포유류이다. 약 3천 5백만 년 전에 생긴 박쥐는 보통 어두컴컴한 동굴이나 폐가 같은 곳에 100마리 이상 군집하는데 가장 특이한 점은 이들이 137종의 감염성 바이러스를 몸 안에 갖고도 아무 트러블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박쥐들이 바이러스의 침입에 대응하는 전략은 흥미롭게도 적과의 동침이다. 박쥐는 바이러스를 격퇴하기 위한 안티 세포를 만들지도 항체를 생성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바이러스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박쥐의 세포를 드나들고 박쥐 또한 그 보답으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박쥐의 분비물이나 침, 배설물 등을 통해 제2숙주에 전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개체들은 즉각 감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박쥐가 보유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간 인간에게 세 차례에 걸쳐 큰 위협을 주었는데 하나가 사향고양이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된 사스이고 또 하나가 낙타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된 메르스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2019년 우한에서 발생한 코비드 19이다.
-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옳을 수 있다는 이성적 판단이 들면 우리는 어쩔수 없이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러지 않고 우상에 집착하면 인류는 지성을 쫓아온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게 돼요."
- 세상이란 하느님이 만든 것 같지는 않고 진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떠한 질서도 없고 무자비한 인간의 욕망만이 꿈틀대는 위험한 곳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인간에게는 한 가지 자유가 주어졌다는 거지요. 내 삶은 내가 요리할 수 있는 자유! 그러니만치 최대한 성실하게 살자, 그것만은 진리가 아니겠느냐는 거죠."
- "물론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인간은 누구나 틀리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 세상에 맞는 것은 없어요. 오늘 맞는 게 내일은 틀리기 마련입니다. 주장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솔크 박사님이 보여준 건 기술이 아니었네요. 이 세상의 모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그 마음이에요. 약자와 동행하는 삶만이 가치가 있다는 진리를 그 짧은 한 마디로 가르쳐주셨어요."
- 2차 세계 대전 후 소아마비는 전 세계에 팬데믹을 가져왔고,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소아마비는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와중에 가난한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 솔크가 드디어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솔크 박사의 진정한 위대함은 오히려 소아마비 백신 개발 이후에 드러나요. 그는 자신이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에 대해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았어요. 전 세계의 돈을 다 쓸어담을 수 있는 바로 그 순간 그는 몰려든 제약 회사 대표들 앞에서 한 마디만을 잔잔히 입 밖으로 밀어냈어요."
"뭐라 말하셨어요?"
정한은 한동안 태평양을 응시하다 고개를 돌려 감동에 잠긴 눈길로 연수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Could you patent the sun(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나요)?"
정한은 마치 자신이 솔크 박사인 양 잔뜩 감정을 담아 독특한 러시아식 엑센트의 영어를 토해냈다.
"솔크 박사가 특허권을 포기한 덕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아마비 백신을 단돈 100원에 전 세계에 나누어주었어요. 전 세계의 무수한 부자들과 동시에 무수한 가난한 사람들이 그 어마어마한 병에서 벗어나는 비용은 단돈 100원이었어요."
- "미국 정부가 급거 전략을 수정한 건 중국이 우한연구소에서 바이러스 합성실험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그 실험은 중국의 뇌관인 동시에 미국의 뇌관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어째서 그렇죠?"
"미국 또한 그 실험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죠. 지난 2015년 우한 연구소와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이 공동으로 지금의 코비드19를 유발했다고 의심받을 만한 실험을 했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
"네, 우한연구소의 그 유명한 박쥐여사 시 젠글리와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랄프 베릭 박사가 사스 바이러스에 여러 종류의 유전자 가닥을 조합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었어요. 그러니 우한연구소에서 바이러스를 합성한 사실은 중국의 책임인 동시에 미국에게도 책임과 비난이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따라서 유출을 거론하는 건 오히려 미국에 짐이 되죠."
"아!"
"마찬가지 이유로 인도와 캐나다 학자들이 제기한 PRRA의 삽입도 미국 정부는 외면할 거에요. 맞다 틀리다 논쟁이 붙으면 중국의 책임이 그 사이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자칫했으면 제가 맨 앞에서 앵무새가 될 뻔했어요."
"노선을 수정한 미국 정부는 한 놈만 팬다는 식으로 다른 건 다 빼고 중국 정부의 초기 대응만을 재판에 올릴 거예요.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연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한 씨는 이런 걸 다 어떻게 알아요? 군사 분야의 로비스트라 했잖아요."
"코비드19는 전쟁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커요. 앞으로 전개될 시나리오를 말해드릴까요?"
"네."
"먼저 세계 각국의 법원에서 중국의 책임을 지목하는 민사 판결이 순차적으로 나올 거예요. 그런 다음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 실험실들에 대한 현장 조사를 요구해요. 물론 중국은 거부해요. 그 다음은 중국에 대한 배상금 청구와 경제 봉쇄를 시도해요. 그 다음은 뭐겠어요?"
"전쟁?"
- "인생에는 우연인 줄 알았던 일들이 나중에 알고 보면 필연이었고, 필연이라 생각했던 게 우연이었구나 하고 생각되는 게 참 많아요."
- "하하, 그런 거였소? 그런데 사회는 어떤 원리로 진화하는 거요? 그것도 같은 원리인가." 세미언이 이번에는 정한을 향해 물었다.
"역사 발전이 보통 그렇게 이루어지죠. 사회라는 공간을 모아놓은 게 역사라는 시간이니까 사회도 그렇게 진화한다고 보는 게 맞네요. 다만 역사는 보는 사람의 시각이 만들어요. 그러니 같은 현상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발전했다 하고 어떤 사람은 퇴보했다 하죠. 자연과학의 원리로 보자면 역사는 양자역학 같은 거예요. 관찰자에 의해 본질이 결정되니까요."
"카, 그거 명언이군. 역사란 관찰자에 의해 본질이 결정된다. 그러면 객관적 역사란 없다는 건가?"
"없어요. 역사란 객관적 사실을 크기순으로 분류하는 게 아니에요. 내 눈으로 분류하는 거죠. 그래서 일본인에게 3.1운동은 소동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는 민족의 위대한 저항인 거죠."
연수가 커피잔을 입에서 떼며 불쑥 끼어들었다.
"3.1 운동이 얼마나 거센 결사 저항이었는지 알려 주는 사실이 있어요. 3.1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은 세계적으로 스페인독감이 대유행이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 독감이 닥쳐 14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어요. 밖에 나가면 역병에 걸려 죽는다고 온 나라가 패닉에 빠져 있었지요. 그런데도 그 죽음의 공포를 뚫고 온 국민이 거리 거리에 쏟아져 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거예요. 일본인들도 이걸 알게 되면 감히 소동이란 말을 쓸 수 없겠죠."
- 치명적 바이러스들이 이렇듯 열악하고 불결한 환경에 노출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코비드 19를 통해 우리는 바이러스가 지구 어느 곳에서 생기든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파된다는 걸 여실히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열악한 시역의 환경을 외면한 채 우리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하는 이기적 행태로는 위험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류문명의 붕괴와 인간성의 상실을 초래할 뿐입니다. 팬데믹은 약자와의 동행만이 인류가 나아갈 길임을 가리키는 마지막 이정표인 것입니다.
- "왕동지. 당신이 모르는 게 있소. 미국과의 대결은 중국의 운명이오. 미국과 대결했던 나라들을 보시오. 소련은 미국 GDP의 38%에 이르렀을 때 가라앉았소. 미국은 유가를 완전히 바닥으로 끌어내려 소련의 경제를 마비시켜버린 거요. 일본이 미국 GDP의 40%가 되었을 때 엔화는 천장 모르게 끌어올려졌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거요. 알겠소? 우리 중국은 잘못한 게 없소.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미국 GDP의 70%가 되었다는 사실이요. 본래 우리도 40%에서 철퇴를 맞고 고꾸라질 뻔했지만 놈들에게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거요. 지금 여기서 미국에 굴하면 영원히 중국은 미국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요. 나는 반드시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하오. 목숨을 잃더라도 이겨낼 거요. 저 경자배상을 기억하시오?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우리는 서구 제국주의 11개국에 4억 5천만 냥을 배상해야만 했소. 중국인민의 피와 땀과 굶주림이 놈들의 기름진 배를 채우는 데 들어간 거요. 나는 미국에게 굴하느니 차라리 죽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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