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은 바로 '평범함'이다. 책에서는 두 가지 평범함과 하나의 악이 등장한다. 하나는 시대의 격류에 쓸려가는 힘없는 인간의 평범함, 다른 하나는 한나 아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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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신이 다른 이들과 별다를 것 없는 인간임을 완전히 망각해야만 살 수 있다.
- 나만 혼자 살아남는 바람에 나는 그 냄새의 유일한 상속인이자 책임자가 되었다.
- 살다 보면 모든 일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비좁은 탄광에서 남은 산소량을 계산하며 석탄을 채취하는 일도, 현기증을 이겨내며 허공 위에 매달린 공사장 들보위를 재빨리 가로지르는 일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공습경보 소리에도, 경보가 울리자마자 빨리 대피하려고 옷을 입은 채 잠드는 데도, 굶주림과 목마름에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음식을 먹고 대가를 받는 데 익숙해졌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일종의 특혜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일 역시 다른 일과 별다를 바 없는 일개 직업일 뿐이다.
- 그레고어는 자신이 독일의 총알받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조국에 대한 믿음이나 애국심 때문에 싸우지 않아. 내가 총을 쏘는 건 두려워서야.
- 인간은 살아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멈출 수도 있다. 그레고어는 아마 살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제3제국의 전투는 계속됐다. 제3제국은 비밀병기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독일은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고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기적을 믿은 적이 없다. 전쟁은 괴링이 괴벨스의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계속될 거라고 요제프는 말했다.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지만 나는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항하기로 했다. 친위대원들이 아니라 내 인생에 반기를 들기로 했다. 그날 나는 나를 크라우젠도르프에 있는 제3제국의 식당으로 이송하는 버스 안에 앉아서 존재하는 것을 멈췄다.
- 나약함은 나약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죄책감을 깨운다.
- 말없이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만이 신의 도움을 기다릴 자격이 있노라 <밤베르크의 기사>
- 나는 이 여자와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나는 이 여자 방에서 뭘하고 있나? 어째서 얼마 전부터 자꾸만 원치 않는 곳에 오게 되는 걸가? 왜 나는 이런 상황에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걸까? 어쩌다 소중한 사람을 빼앗기고 나만 혼자 살아남게 된 걸까? 적응력은 인간 최고의 능력이라지만 적응을 하면 할수록 내 인간적인 면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 다시 한 번 우리는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확실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전복되는 절단된 시대를 살고 있었다. 가족이 해체되고 생존본능조차 망가진 그런 시대를 살고 있었다.
-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이토록 연약한 것에 어떻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강한 것에서 가치를 찾지만, 생명은 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파괴할 수 없는 것에서 가치를 찾지만, 생명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강한 것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할 수도 있는 거다. 예를 들면 조국과 같이.
- 이렇게 쉽게 삶의 일부분을 생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대해 무지한 덕분에 사람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타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인간의 특성 덕분이다.
- 인간은 일의 노예다. 인간이 일을 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역할을 맡아 정해진 방향으로 나아가며 탈선하거나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다.
- 당신만 예외라고 생각하지 마.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정말로 죽음 대신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선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목에 바위를 매단 채 모이 호수 바닥을 가라앉는 대신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선택할지는 모르겠다. 나를 제외한 전 인류가 전쟁을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인간은 미친 종족이다. 그런 종족의 본능을 충족시켜서는 안 된다.
- 우리는 합의하에 헤어졌다.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이별의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았다거나 덜 고통스러웠다는 의미로 '합의하에 헤어졌다'라는 표현을 쓰지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포기를 못 하거나 상대방에게 일부러 상처를 줄 경우 이별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별은 아프다. 특히 낮은 확률을 뚫고 두 번째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이 헤어질 경우 더 그렇다. 우리 둘은 헤어졌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만났다.
- 나는 어차피 오래전에 끝난 사이였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결혼생활이 정확히 언제 끝났는지 말하기는 힘들다. 결혼이란 부부가 함께, 아니면 적어도 둘 중 한 명이 끝내기로 결정할 때 끝나는 법이니까. 결혼이란 파도처럼 유동적이어서 언제든 끝날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결혼은 선형적인 동선을 따르지도 않고 꼭 논리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최악의 상황이 반드시 파국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찌된 영문인지 하루 만에 관계가 회복돼서 왜 헤어지려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결혼은 단순한 찬반 문제나 덧셈뺄셈이 아니다. 모든 결혼은 언젠가 결국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인간에게는 그 결혼을 유지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기도 하다.
- 누군가를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은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감정이다. 다시는 그 사람을 못 보고, 다시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못 견디는 자기 자신 때문에 힘든 거다. 고통은 이기적인 감정이다.
- 살면서 유일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존하는 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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