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장편소설.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독특한 마을. 그곳에 들어온 잠든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온갖 꿈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다. 긴 잠을 자는 사람들
www.aladin.co.kr
- "제가 사랑한 시간은 모두가 잠든 시간입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과거에 대한 미련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이 굳이 잠들었던 시간까지 포함하여 떠올리지 않고, 거창한 미래를 기약하는 사람이 잠들 시간을 고대하지 않으며, 하물며 잠들어 있는 사람이 자신의 현재가 깊이 잠들어있음을 채 깨닫지 못하는데, 부족한 제가 어찌 이딱한 시간을 다스려보겠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 첫째가 미래만 생각하느라 몽땅 잊어버린 과거의 기억들은, 그 양이 어찌나 많았던지 그들이 사는 땅에 안개처럼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빽빽한 안개 속에서 친구와 가족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사라지자 그들은 무엇을 위해 미래를 꿈꿔 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먼 미래는커녕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제자 쪽 상황도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좋았던 기억에만 갇혀 세월의 흐름과 예정된 이별, 그리고 서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마음 여린 그들의 눈물이 쉴 새 없이 땅 밑으로 흘러 커다란 동굴을 만들어냈고 심약한 그들은 동굴 속에 꼭꼭 숨어버렸습니다.
- 사람은 왜 잠을 자고 꿈을 꾸는가? 그건 바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제자처럼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든, 두 번째 제자처럼 과거에만 연연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신은 세 번째 제자에게 잠든 시간을 맡겨서 그들을 돕게 한 거예요. 푹 자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은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
- "앞 내용을 미리 아는 건 재미없거든요. 영화도 그렇고 사는 것도요. 스포일러는 딱 질색이에요."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진 않나요?"
"전혀요. 오히려 미리 안다면 정말 불행할 거예요. 좋은 미래를 본들 그게 진짜라는 보장도 없는데 괜히 나태해질 수도 있고요. 그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감만 커지겠죠."
"다들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궁금해 하시던데 손님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목적지요?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 맛이죠. 유명 작가가 되는 게 전부가 아닌걸요. 전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는 게 좋아요. 그러다가 해안가에 도착하든 사막에 도착하든 그건 그때 가서 납득하겠죠. 제 대답이 너무 장황했죠?"
"전혀요.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손님은 현재에 집중하면 그에 걸맞은 미래가 자연스럽게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 "타인의 삶을 꾸고 나면 어떤 꿈값이 도착할까요? 전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면 부러워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우월감이나 안도감을 느끼기도 해요."
페니는 여러 상황을 떠올렸다. 좋은 가게에 먼저 취직했거나 집이 잘사는 동창생을 떠올리기도 하고, 변두리 하역장에서 일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내가 쟤보단 낫지.'라고 생각했다가 부끄러웠던 기억도 떠올랐다.
"페니, 나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고 믿는단다. 첫째, 아무래도 삶에 만족할 수 없을 때는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쉬워 보이지만 첫 번째 방법보다 어려운 거란다. 게다가 첫 번째 방법으로 삶을 바꾼 사람도 결국엔 두 번째 방법까지 터득해야 비로소 평온해질 수 있지."
"어떤 방법이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 두 번째 방법은 말은 쉽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지. 하지만 정말 할 수 있게 된다면, 글쎄다. 행복이 허무하리만치 가까이에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지."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저 / 출판사 문예출판사) (0) | 2020.12.10 |
---|---|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윤정은 저 / 출판사 애플북스) (0) | 2020.12.07 |
3n의 세계 (박문영 저 /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0) | 2020.11.21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저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0) | 2020.10.12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저 /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0) | 2020.10.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