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년 차 며느리이자 인생 선배인 우리 엄마는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착한 며느리였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며느리 행동 강령을 몸소 실천하며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결혼생활 내내 애썼다. 그리고 이제 와 가슴 치며 그 시간을 후회한다. 사랑받기 위해 공들인 크고 작은 마음을 알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의미를 찾기 못한 노력이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 "그냥 참아."
"네?"
"이기지 말고 참아요. 본인만 참으면 모두가 다 행복해."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하다. 나만 참으면, 나만 참으면.... '참을 인 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는 대한민국 며느리로서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 참고 또 참으며 살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결혼 4년 차, 이제 와 돌이켜보니 강 선생님의 말씀에는 작은 오류가 있었다.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하다'가 아니다. 나만 참으면 '나를 뺀' 모두가 행복하다.
- 결혼식 때 울지 마. 울면 사연 있는 여자 같아 보인대.
너무 웃어도 안 돼. 신부가 헤벌쭉하면 사람들이 흉봐.
결혼식이 임박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신부의 행동 강령에 대해 말이 많았다.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표정 관리'였다. 누구는 울면 뒷말이 많다 하고 다른 누구는 웃으면 헤프게 보인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신부 입장도 하기 전부터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혹시나 눈물이 터질까 봐 결혼식 내내 부모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마음속으로 샤이니의 <링딩동>만 반복 재생했다. 남편이 축가를 부를 때는 웃음이 터졌는데 애써 감추며 조신한 척 미소만 지었다.
이제 와 그 모습을 다시 보니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게 조금 후회가 된다. 굳이 그렇게까지 감추고 참아야 했을까. 눈물 좀 흘리면 어떻고, 깔깔 웃으면 또 어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 결혼식인데.
- 문제는 남편이 '모드 전환'에 수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착한 아들' '좋은 오빠' 모드 두 개뿐이었는데, 결혼 후 '훌륭한 남편'까지 더해지니 과부하가 걸렸는지 자주 오류가 난다.
내 앞에서 대뜸 '좋은 오빠' 모드를 장착해 동생 지갑을 사다 달라고 하질 않나, 시부모님 앞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훌륭한 남편' 모드를 발휘해 눈총을 받는다. 남편의 모드 전환 오작동은 우리의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 결혼 후 첫 명절, 아버님과 남편은 밤을 깠다.
어머님과 나, 시누이는 주방으로 갔다.
남자 둘은 밤을 다 까고 TV를 봤다.
여자 셋은 음식을 준비했다.
남자 둘은 TV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여자 셋 중 한 명은 남자 친구를 만난다며 쫄래쫄래 밖으로 나갔다.
남자 둘은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TV를 봤다.
남은 여자 둘 중 한 명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며 슬쩍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자 둘 중 한 명은 TV를 보다 다시 잠들고, 다른 한 명은 방에 들어가 컴퓨터 게임을 했다.
혼자 남은 여자는 음식을 했다. 설거지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어지간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 소름 끼치는 일이 벌어졌다. 시작은 분명 다섯이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나 혼자 남았다.
"우리 며느리 잘하네."
한바탕 통화를 마치고 온 어머님은 똥 씹은 표정으로 전을 뒤집는 나를 칭찬했다. 놀러 나갔던 시누이도 쇼핑백을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열심히 일한 새언니 먹으라며 식어빠진 핫도그도 건넸다. 안 그래도 기름 냄새에 토할 것 같았는데 아이고 고마워라. 게임을 하던 남편이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왔다. 순간 내 순에 스친 살기를 그는 보고야 말았다.
- 남편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높고, 운동도 즐겨 한다. 옷도 패셔니스타처럼 센스 있게 잘 입고, 피부는 송중기 뺨치게 맑고 투명하다. 4년은 만나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며 어지간한 일에는 화도 잘 내지 않는다. 그의 밝은 에너지가 참 좋았다. 그것은 모두 콩깍지였을까, 신의 장난질이었을까, 가혹한 운명이었을까. 그때의 나여, 매우 편협한 시각을 가졌었구나.
연인에서 부부로 관계가 달라지니 남편의 장점이 모두 단점으로 바뀌는 기적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자 친구였을 때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바빴던 면면들이 남편에게 적용되니 분노 유발 행위로 변질됐다.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해 TV를 볼 때면 아내가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다 게워도, 베란다에서 고꾸라져 무릎으로 기어 나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운동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께서는 야구 동호회와 테니스 강습, 헬스까지 섭렵하시느라 얼굴 한번 뵙기가 참으로 어렵다. 패셔니스타의 품위 유지에는 큰 비용이 들고, 송중기 뺨치는 피부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화장품은 화장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아내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넘치든 말든 세상 순진한 얼굴로 방실방실 웃는 모습은 특히나 뒷목을 잡게 하는 킬링 포인트다.
이 정도만 해도 애교로 봐줬을 텐데, 결혼 후 뒤늦게 발견한 남편의 치명적 단점은 그가 너무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70억 세계인 누구에게도 그렇다. 옆집 아주머니에게도, 집 앞의 횟집 사장님에게도, 치킨 배달원에게도 깍듯하고 상냥하다. 그것을 질투하거나 의심하는 건 아니다. 어머님에게는 특히 착한 아들이 된다는 것,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 "당신은 여태껏 결혼이 뭔지 모르고 있었고, 어머님은 당신을 결혼시킬 준비가 안 되셨네."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 나는 한배를 탔다. 그 배가 나아갈 방향과 속도,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오로지 배에 탄 우리 둘의 몫이다. 남편은 그 사실을 간과했다. 부모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키를 돌릴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자고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남편과 내가 탄 배는 정원 초과다.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의 품을 떠났는데, 남편은 여전히 아들로서 책임감이 1순위였다. 시부모님 역시 아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을 원했지 누군가의 아들을 바랐던 것이 아니다. 이건 명백한 제품 하자다. 무상 A/S 또는 반품이 시급하다.
- 그것을 계기로 남편은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다시는 우리 가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며 가정의 자립을 위해 총대를 멨다. 비공식 용돈을 드리는 일은 그만두고 소정의 금액을 시가와 친정에 똑같이 사용하되,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시가의 요구에 일단 'YES'부터 답하는 일도 없어졌다. 어머님의 무한한 바람과 소망을 내게 그대로 전달하기 전에 본인의 선에서 거절하거나, 의논이 필요하면 함께 의견을 조율해 적절한 답을 찾았다.
물론 그로 인해 남편은 더 피곤해졌다. 어머님께 잔소리를 듣는 일이 부쩍 늘어갔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효자였던 아들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에 시부모님이 느끼실 섭섭한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립의 길은 언제나 그렇듯 험난하고 고되다. 그렇다고 피해 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남편의 독립,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 가끔 시가에서 느끼는 나의 기분에 대해 남편에게 말할 때가 있다. 남편은 그때마다 가족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말하면서도 고의는 아니라고 굳이 덧붙인다.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 골탕 먹이려, 상처 주려 하는 말과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례함이 용인되지는 않는다. 이미 생겨버린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그것은 위로도 핑계도 되지 않는다.
-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오후,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거실을 채운다. 아일랜드 식탁에서 간단히 만든 오일 파스타를 청량한 탄산수에 곁들여 늦은 점심을 즐긴다. 식사 후에는 테라스에 놓인 작은 티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커피 향을 품고 집안을 맴돌다 이내 스르륵 떠난다.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에는 남편과 손을 잡고 아파트 앞 공원을 산책한다. 계절의 향이 묻어난 밤공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우리는 잠시 벤치에 낮아 도란도란 수다를 이어간다.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이라 생각했다. 결혼하면 당연히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것은 대중문화의 폐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신혼생활은 그저 꿈의 시나리오였다. 현실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도 많았다.
일단 우리 집에는 나의 로망인 아일랜드 식탁이 없다. 주방은 너무 좁은 나머지 조리를 하면서 동시에 냉장고 문을 열 수 없는 기하학적 구조를 자랑한다. 내가 조금만 더 살이 찌면 그 사이에 끼여 구조 요청을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것 같아 생존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다니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베란다 창문을 열면 매캐한 공기가 집 안을 장악한다. 각종 소음은 서비스다. 산책할 공원이 있어야 할 아파트 앞에는 덤프트럭과 레미콘이 시속 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는 6차선 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신혼부부 대다수가 그렇듯, 우리도 원치 않았던 무소유의 삶을 시작했다. 어제의 나는 모은 돈이 없고 내일의 내가 벌 돈도 많지 않으니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용감한 대출도 불가능했다. 콧대 높은 서울은 우리 부부를 거부했고,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우리의 소박한 예산에 실소를 터뜨렸다. 감히 가난한 신혼부부가 서울 땅에 발붙이려 하다니, 썩 수도권으로 꺼져버리라는 그들의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아 거북했다.
- 잘하고 싶었고 잘하려고 했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의 존재감은 딱 그 정도였다.
찰나의 순간에 마주한 본심에 나는 상처받았다. 나와 그들 사이에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깨끗이 지울 수 있다고 착각했다. 잠시 한눈팔면 금세 자라나는 흰머리처럼, 조금만 게으르면 논밭을 뒤덮는 잡초처럼, 그들과의 경계선은 내 작은 흔들림과 방심에도 쉽게 모습을 드러냈다. 경계선이 보이지 않게 죽어라 닦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아등바등 매일같이 지우고 지우길 반복하는 대신 더 명확하게 선을 긋고 살기로 했다. 물론 선을 넘나들 때보다 내게 허락된 자리는 좁아졌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 상처받는 일도 줄었으니까.
- 외로움이라는 낯선 감정을 결혼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어버린 이 미스터리한 상황은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면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기대감.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결혼해도 여전히 내게는 혼자인 시간이 있고, 또 다른 외로움과 쓸쓸함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 시간을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 요즘 내겐 필요하다.
- 우리 중 누구 하나 말 잘 듣는 며느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시어머니께 예쁨을 받지 못한다고 삶이 피폐해지지는 않는다. 물론 사이좋은 고부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를 위해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참고 맞춰주는 것이 과연 정답인지는 의문이다.
어른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 그 정도면 가정의 평화는 수호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선을 지키는 것은 며느리 혼자만의 몫이 아닐 테지만.
- 남편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그저 제 역할을 다할 뿐이다.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자기 몫의 집안일을 하는 것, 그것은 당연한 규칙이자 예의다.
- 결혼은 충돌의 연속이다. 다른 가치관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순간에 가족으로 묶이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을 다른 생각으로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그걸 이해하고 포용하기란 불가능하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들장미 소녀 캔디도 시월드에 입성하는 순간 눈물 한 바가지 쏟으리라 장담한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미리 챙기면 되고, 날이 추울 땐 패딩으로 무장하면 된다. 우산 없이 비를 맞을 때가 문제지, 비는 언제든 내릴 수 있다. 대책 없이 맞이하는 한파가 걱정될 뿐 겨울은 언제나 춥다. 시가와의 충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대신 미리 준비하면 의외로 상황은 쉬워진다.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애초에 만두전골을 사 오지 않았다면 듣지 않았을 잔소리였다. 시가에 갈 때마다 매번 만두전골을 들고 갈 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사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도 내가 좋은 마음으로 사 온 만두전골을 배불리 먹었던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 아버님이 좋아하는 만두전골을 또 사 오지 않은 며느리의 야박함만 곱씹을 뿐이다. 이렇게 또 인생을 배운다.
- 아홉 번 착한 행동을 하다가 한 번 무심해지면 서운함은 배가 된다. 아홉 번의 배려를 기억하지 않고, 한 번의 섭섭함만 떠올린다. 열 번을 모두 잘할 것이 아니라면(그래도 본전이겠지만) 아홉 번이든 여덟 번이든 호의는 의미가 없다.
- 좋은 순간을 같이 공유하던 때보다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목적지를 정하고 함께 걸어간다는 것, 그것이 연애와 결혼의 가장 큰 차이다.
서로를 이끌어주기도 하고 기다리는 법도 배우며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꽤 근사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 며느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사랑받으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충분히 행복한 결혼생활을 그려갈 수 있다. 며느리 역할에 충실하기 전에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먼저다.
- 가족을 위한 희생, 며느리의 감내가 잠시나마 가정의 평화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아프지 않은 척 참고 있어도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깊어지고 언젠가 곪아 터진다. 인내가 미덕인 시대는 호모 사피엔스 시절에 끝났다.
사랑받으려 노력하던 시절, 나는 매일매일 다쳤다. 노력이 배신으로 돌아와 내 마음에 상처를 냈고 그것을 믿을 수 없어 다시금 그 상황에 나를 가져다 놓았다. 내가 혹시 잘못한 점은 없는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고민하며 계속해서 상황을 되감았다. 상처받았던 상황을 곱씹으며 다시 또 화를 내고, 참고, 다치길 반복했다.
몇 날 며칠을 잠 못 이루고 시가 생각만 하면 지나가는 사람의 등짝을 발로 걷어차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망가졌다. 결혼 자체를 후회할 만큼 힘들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하게 됐다.
결국 사랑받기를 포기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조금 더 일찍 포기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랬다면 내 인생에 불행한 날이 조금이나마 줄었을 텐데. 사랑받겠다는 욕심으로 너무 성급하게 다가갔던 게 문제는 아니었을까. 서로의 가시를 미처 보지 못하고 부대끼며 살아보겠다고 덤볐으니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한 발 멀어지니 내 마음이 다치는 일이 줄었다.
결혼이라는 울타리가 내어준 자리는 그리 넓지 않기에 나의 가시가 무심결에 그들에게 상처를 내지 않도록, 나도 그들의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최적의 거리를 찾고 있다. 너무 멀어져서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워져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적당한 거리를 찾기가 참 어렵다. 누가 좀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럼에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가 걸려도 괜찮다. 가시밭에서 뒹굴었을 때보다 지금이 한결 나아졌으니까 희망이라는 게 좀 보인다. 다만 그날이 빨리 오기를, 부디 그때까지 쉬이 지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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