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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에게 배우는 자존감 관계법 (가토 다이조 저 / 출판사 사람과나무사이)

by hyeranKIM 202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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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믿고 자기 자신을 신뢰한다. 충분히 사랑받은 사람, 어리광 욕구를 충족한 사람은 자신을 빋고 홀로 설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감정이 오락가락하지 않는다.

반면 어린 시절 부모에게 감정을 억압받은 아이는 내면의 감정 속으로 달팽이처럼 움츠러든다. 어리광 욕구를 완벽하게 억누르며 지낸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마치 어른처럼 부모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도 한다.

이런 아이는 주위의 지나친 요구에 맞추느라 자기 내면의 감정에 둔감해진다. 사실 아이는 아직 주위의 이런 저런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주위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냉랭하게 거부당하는 탓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맞춰주려 애쓴다. 매몰차게 거부당하면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아이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절박한 생존본능으로 아이는 부모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고 반대로 부모가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을 애써 연기하면서 억지로 맞춰간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고 투정하고 싶어도 그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리광 욕구는 부모의 욕구 충족에 걸림돌이 되므로 아이는 욕망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뚜껑을 덮고 못을 박아 봉인한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말이다.

이럴 때 실제의 당신 자신은 허락받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그 '실제의 자신'을 죄책감을 느끼며 원죄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당신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차마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죄책감은 자기방어 심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바로 부모를 향한 방어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 자신을 애써 방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부모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존재가 아니며 자신의 존재를 꺼림칙하게 느낄 필요도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당신 안에 어리광 욕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언제나 부루퉁한 사람,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 자신과 마주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사람, 자기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문제는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을 바라는지, 자신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런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가? 바로 '다정함'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데 급급해 자신의 바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리광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어리광쟁이다. 먼저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어리광쟁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라지는 게 아니며 기분만 찜찜할 뿐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억누른다 한들 언젠가 다른 형태로 튀어나온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속으로 기뻐하는 식이다.

 

-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을 때 심사숙고하며 차분히 돌아봐야 할 점이 있다. 당신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관계 자체를 원하는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관계를 맺으려 하는가? 혹시 내 욕구를 충족하고자 그 사람과 만나려 하는 것은 아닌가?'

 

-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리고 인생을 즐길 줄 알게 되면 많은 사람 가운데 홀로 있어도 기죽지 않고 당당해진다. 혼자 들판에 서 있어도 내 안에 뭔가 든든한 버팀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혼자서 공부해도 콧노래가 나오고 능률이 오른다. 혼자서 커피를 마셔도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

 

- "여자가 말이야, 나긋나긋하고 고분고분한 맛이 있어야지. 그렇게 뻣뻣하게 굴어서 어디 제대로 시집이나 가겠어? 그러니까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거야!"

한심한 남자는 여자 앞에서 '당신을 위해 특별히 해주는 쓴소리'라는 식으로 무례하고도 불쾌한 평가를 남발한다. 이런 말은 당사자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아픈 기억이자 깊은 상처로 남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을 '차갑다'거나 '고분고분하지 않다'거나 '애고가 없다'거나 '무뚝뚝하고 건방지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평가를 할까?

 

- 한번 가정해보자. A가 B에게 약간 억지를 부리며 뭔가를 요구했는데 B가 받아주지 않았다. 이때 A가 B에게 "세상 혼자 살아요?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줄 알아야죠."라고 말도 안되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이다.

A는 B를 어리광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 허영심이 많고 까칠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다정하며 대놓고 비판, 아니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어리광 욕구가 내면에 가득한 성숙하지 못한 사람, 허영심이 가득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한 이기적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 사람은 바로 A에게 비난받는 B가 아닌 B를 비난하는 A다. A는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뻔뻔하게도 남의 눈의 티끌을 문제 삼는 전형적인 '내로남불' 유형일 가능성이 크다.

 

-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인가 아닌가? 바로 이 점에 인간 심리의 결정적 열쇠가 달려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약간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사랑받고 있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럼 뭐가 중요할까? 그보다는 자기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다시 말해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보다 '나는 나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한 사람 평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행복지수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만족 정도에 달려 있는데, 그 역시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가? 예컨대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따뜻하면서도 인격적으로 성숙한 어른에게 둘러싸여 자란 사람이 그렇다. 반면 정서적으로 냉랭하고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어른 손에서 자란 사람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자신감과 자존감도 어린 시절 자기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 부모나 가족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자란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누구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또 어떤 일을 만나도 회피하거나 미루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태도를 보인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볼까'라거나 '재미있어 보이네.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대범하게 나선다.

그런 용기와 대범함은 어디서 나올까?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실패하면 자칫 다른 사람에게 실망감을 주고 배척당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기 대문이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자신은 밀려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자리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실패를 피해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는 실패하면 내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체가 없다.

이런 유형의 사람의 생활 반경은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그는 다양한 일을 경험한다. 이런저런 사람을 일상적으로 만난다. 자신에게 그때그때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붙잡고 부지런히 활용한다.

 

- 어린 시절 당신이 어쩌다 실수한 그 순간, 하필 우연히 옆에 있던 한 어른의 못마땅한 눈초리를 한평생 가슴속에 품고 살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보듬어야 할 대상은 이 세상에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독을 마치 보물단지라도 되는 듯 간직하고 사는 꼴이다. 부끄럼쟁이가 지금 소중히 마음속에 간직한 그 보물이 알고 보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허접쓰레기였던 셈이다.

 

- 인생을 활기차게 사는 첫걸음은 자신을 긍정해주는 사람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인식 전환의 순간이다. 시각을 바꾸면 좀 더 활기찬 인생을 살 수 있고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멋진 인생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이 생각으로 당신의 하루에 시동을 걸고 용기라는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삶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당신이 '나는 멋진 이생을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은 당신 생각대로 굴러갈 것이다. 당신은 절대로 멋진 인생을 살 수 없을 것이고, 늘 위축된 자세로 초라하고 비루한 삶을 견디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삶을 살고 싶은가?

 

- 자신이 상대방에게 뭔가 특별한 일을 해주지 않으면 '나는 상대방과 같이 있을 가치가 없다'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문제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뭔가를 해주는데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자신감이 생기기는커녕 있던 자신감도 차츰 사라진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가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고 믿어야 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대인관계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 광장이나 거리에 나서는 상황을 두려워하듯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상대방이 분명 자신을 좋아하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린 시절의 메세지는 그만큼 중요하고 무겁다.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도 문제다. 이 경우 십중팔구 그 호의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상대방에게 지나칠 정도로 헌신하거나 충성을 맹세하기도 한다. 특정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사람의 유형 역시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라고 느끼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자의식은 비극이다. 이런 식의 마음가짐이 일단 마음속에 똬리를 틀면 마치 새로 난 길에 이정표를 세우기라도 한듯 그 마음가짐을 굳히는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특정한 사람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자 자신을 바꾸려 노력하기도 하고, 명예나 재산으로 자신의 겉모습을 꾸미려 애쓰기도 한다. 또 그러는 사이 틈틈이 자신을 비하하고 때로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자의식을 일깨워주는 유형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콕콕 찌르며 자극한다. 그런데 다른 어떤 사람과 있으면 입 안의 가시처럼 신경 쓰이던 부정적인 생각이 희한하게도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급소를 자극하지 않는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 급소'를 자극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다. 매사에 자신감 있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므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편안한 태도를 유지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추는 일 따위에는 관심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나는 환영받는 사람이야'라고 믿는 사람과 좀 더 많은 접점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나는 환영받는 사람이야'라고 빋는 사람은 우월감이나 허영심이 없다. 인간은 자신감이 없으면 허세를 부리게 마련이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자신감을 가지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자신감만 북돋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 심리학에서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 중 반동형성 (reaction formation, 억압된 반사회적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정반대 방향으로 돌려버리는 방어기제)이라는 것이 있다. 가령 마음속에 적대감이 억눌려 있을 경우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나 비굴할 만큼 정중한 태도로 일관하는 식이다. 상대방을 혐오하는 감정이 억압받고 있으면 반대로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극진한 호의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행동양식을 '반동형성'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행동은 자기 자신을 위한 방어기제다. 물론 내가 심리적 마조히즘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반동형성과 같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은 언뜻 볼 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복잡한 생물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 롤로 메이는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아존중 대신 자기비하를 가하는 심리는 고독과 무가치 감각이라는 문제에 무방비로 정면충돌하지 않기 위한 회피에 해당한다.

 

- 독일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에서 비슷한 신경 증상을 언급한다. 이 책에서 그는 최악의 적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자기비난과 자기비판에 빠진 사람도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과 일체감을 느끼며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자아불안감을 해소하고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이 육체적으로 공존하듯 오만한 사람과 자기비하가 심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를 바탕으로 그들은 서로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사실 오만한 사람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자기비하에 빠진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양쪽 모두 혼자서는 자아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심리학적으로 하나의 근본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 하나의 근본 욕구란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 자신의 약점에서 도망치려는 마음을 말한다. 당

 

- 당신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상대방이 당신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랑을 믿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자기 약점을 그에게 숨기려고 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약점을 비난하지 않을까, 자신의 결점에 실망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불안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방어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그는 전혀 방어적일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방어 태세를 취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경질적인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결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깨닫질 못한다. 아니, 그는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도통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상대방은 자신의 결점을 잘 알지만 그것 때문에 실망해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상대방이 실망해서 더날까 봐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내 앞에서는 걱정하지 말고 그저 편하게 있어도 돼"라고 말해주어도 걱정을 내려놓지 못한다. 더구나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 사람은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본모습을 자연스럽게 내보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자신을 맡기고 그 감정과 일체화하려고 노력해보라. 그렇게 될 대 비로소 우정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내면에서 솟아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두려워하면 마음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인간관계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지쳐도 심리적으로는 활기찬 법이다.

 

-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짐짓 아닌 척하는 인간관계는 언뜻 좋아 보이지만 실은 아무런 유대관계 없이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맺은 인간관계는 점점 더 위장 강도를 높이고 좀 더 정교한 가면을 쓰기를 요구한다. 그처럼 거짓된 인간관계에 몸을 맡길 경우 어느새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상대방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진정한 인간관계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관계에는 진정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아실현에 충실한 인간관계는 서로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 무방비 상태에 가깝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하는 일 중에는 내가 싫어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해 상대방에게 푹 빠져 있는 시기라면 눈에 콩깍지가 껴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열병처럼 사랑앓이를 할 때는 상대방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콩깍지가 눈을 가리는 시기는 지나가게 마련이다.

어느 순간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는 게 정상이다. 색안경이 벗겨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 순간이 찾아와도 아직 열병에 시달리는 시기처럼 무엇이든 마음에 든다는 시늉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시늉을 해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저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잇는 방법을 잊어버린 허울분인 남녀관계에 불과하다.

 

-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상대방이 내게 아무리 소중해도 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사람 자체,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어찌 마음이 즐겁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없으면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물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만 설령 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자아실현적 관계에서는 "너를 많이 사랑해!"라고 하기보다는 "너를 아껴주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는 수동적 사랑이 아니라 능동적인 사랑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못한다. 자아실현형 인간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자신을 소중히 '아껴달라'고 요구한다.

"너를 많이 사랑해!",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어!"라는 말로 생색을 내고 상대방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은 나르시스트다. 반면 "너를 소중히 아겨주고 싶어", "나를 소중하게 여겨줘"라는 말은 자기 안의 어리광 기질과 유아 성향을 벗어버린 성숙한 어른의 사랑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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