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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양재진, 양재웅 저 / 출판사 21세기북스)

by hyeranKIM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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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시대에는 자의식 과잉인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 명의 형제자매와 어울려 컸던 과거 아이들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의 지원과 관심을 고스란히 혼자 받는 경우가 많죠. "너는 대단한 아이야" 혹은 "너는 꼭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식으로요. 그 결과 본인이 구체적인 경험을 하고 성취하기 전에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게 됩니다. 즉 자의식 과잉 상태, 혹은 '거짓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경우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굉장히 어려워하고 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부족한 나를 마주하면 그 순간을 못 견디기 때문에, 도전 자체를 회피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죠. 마치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아서 한 번도 지지 않은 상태라 할까요.

 

- 자존감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먼저, 무엇이든 '스스로의 성취'를 이루는 것입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엇이든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내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때 그런 성취에 대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경우 자존감은 더욱 높아질 수 있습니다. 앞서 자의식 과잉의 경우 스스로의 성취 없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조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결과 자기의식만 높아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실제의 나를 마주하고 좌절했을 때 복원력을 통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사와 기부'를 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됩니다. 자존감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인정할 때 상당히 높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봉사와 기부는 타인을 위해 하는 행동이지만 무엇보다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자존감을 높이기에 가장 접근하기도 쉽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가장 쉽고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누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 혹은 나의 가치를 잘 알아주지 않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 우리는 때때로 그들이 평가하는 나의 모습이 실제 나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만큼은 스스로의 편이 돼주세요. 내가 싫고, 밉고, 한심하게만 느껴진다면 나의 작은 것들부터 사랑하고, 존중해 주는 연습을 했으면 합니다.

 

- 우리는 감정적 거리가 먼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피드백을 상당히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가족 간에 건네는 말은 무엇보다 큰 힘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더욱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가족이란 평생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관계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가족이기에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아도 가족이기에 알아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정서적 거리가 가깝기에 그만큼 더욱 큰 상처가 돼 힘들어지고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에 좌절감과 절망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가족 간에는 더욱 예의를 지키고 배려해야 하며, 적당한 정서적 거리 또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과의 적당한 정서적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가족으로부터 특히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이 우선돼야 합니다. 독립은 신체적 독립, 정신적 독립, 경제적 독립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경제적 독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적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우선돼야 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면 자신의 인생에 부모님의 지분이 있는 것이기에 정신적 독립이 불가능합니다. 신체적 독립은 말할 것도 없고요.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아서 주거 공간을 마련한다면 마찬가지로 그 공간에 부모님의 지분이 있기에 독립이라고 할 수 없죠. 경제적 독립을 통해서 신체적, 정신적 독립을 해야만 부모님과 정서적 거리를 적당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의 정서적인 경계가 희미할 정도로 밀착된 경우는 나의 존재 자체를 논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나가길 바랍니다.

 

- 자기 자신과도 어느 정도 정서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 즉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키우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인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화하지 못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늘 부정적이기 쉽습니다. 혹은 타인의 평가에 따라 본인이 가치 있다고 믿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메타인지는 감정 일기와 같이 자신의 구체적인 감정 흐름에 대해 이성적인 관찰을 함으로써 훈련할 수 있습니다. 노의 앞쪽 부위인 전두엽은 계획하고 실행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피드백을 재해석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그런 전두엽을 자극하는 활동을 통해 메타인지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즉 본인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외부의 세상과 자신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를 존중하는 마음을 품을 때, 업적이나 성취와 같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을 결과로서만 하게 될 경우, 스스로에 대한 평가 역시 대부분 부정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 자존심이 세다, 자존심을 부린다는 것은 결국 다른 대상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나 혼자 있는 상태에서 자존심이 세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즉 인정 욕구와 비슷하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반면 자존감에서 다른 사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는 개의치 않습니다.

즉 나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 욕구에 목말라하지 않고 굳이 자존심을 부리거나 자존심이 세 보이는 행동들을 하지도 않습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결과적으로는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개념인 것입니다.

 

- 과거에 학습된 안 좋았던 기억 데이터가 미래에도 영향을 미쳐, 과거 어려움을 겪었던 특정 유형의 사람이나 상황을 계속해서 기피하는 것이죠. 항상 자신의 데이터가 고정돼 있는 것입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나를 곤란하게 했던 상황이나 사람의 특수성을 받아들이고, 상황이나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나도 변할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또한 과거의 나와 달리 앞으로의 나는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사실이니까요. 고정된 생각을 버리는 연습과 함께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활동으로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길 바랍니다.

 

- 떠오르는 생각들의 현실 가능성을 계산해봅니다. 모든 일은 스스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에 사로잡혀 좋지 않은 상상에 매달리지 말고 생각이 그냥 스쳐 지나가도록 해주세요.

 

-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그 불안을 미룰 만한 다른 일을 해보는 것입니다.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상 속에서 걱정과 불안이 시시때때로 커진다면 그때마다 '일단 ~를 하자'라고 되뇌며 걱정을 뒤로 미루려는 노력을 해보길 바랍니다. '일단 밥을 먹자' '일단 청소를 하자' 등 다른 것들을 하며 걱정할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행복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보상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따라옵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욕심입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오늘과 다른 내일을 바라는 것은 정신병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아주 작은 변화를 통해서도 오늘 이 순간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려면 '하고 싶지만 참고하지 않는 것' '하기 싫지만 참고하는 것'이라는 전제 조건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못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해야만 되는 것을 위해 참을 수 있어야 하고 정말 하기 싫은 것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을 위해 참고하는 노력을 해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은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고 막막할 때, 현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 둘 곳이 없을 때 사주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곳에서 운이 나쁘다거나 복이 없다는 등의 좋지 않은 이야기만 들었다면 오래 지속되지 않겠지만, 대부분 곧잘 풀린다, 대운이 온다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에는 큰 힘과 위안을 받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다시 찾게 되고요.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현실을 잊는 하나의 도피처로 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현실을 바꾸는 것입니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스스로에게 자신이 생기면 이런 맹신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사주에 빠지게 됐는지,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마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사주와 점 등에 가장 빠지기 쉬우니까요.

사주나 역술을 보는 곳의 답은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죠. 사실 답은 이미 본인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서 그곳에 갈 가능성이 크죠.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나의 마음이 어떤지를 잘 살펴보고 그 위안을 다른 곳이 아닌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 흔히 팔자라는 말을 하는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이를 반복 강박으로 봅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과거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을 말하는데요. 쉽게 말해 좋지 않은 선택을 똑같이 반복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정작 당사자는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사건이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 때문에 유발됐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불운이나 운명의 탓으로 돌립니다.

반복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인지를 깊이 들여다보고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죠. 소위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하나입니다.

상담이나 심리 검사를 통해 스스로를 제대로 보려는 노력이 아닌, 외부에서 나에 대해 풀어주는 사주나 점으로는 절대 바뀌거나 영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직접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통해 내가 보완해야 할 점과 버려야 할 점을 깨닫고, 실제로 바꿔나가면서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해줄 때 현실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주나 점을 보며 들었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의 큰 그림으로 두고,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만들어가는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삶에 대한 주인의식을 통해 인생의 주도권을 나에게 주세요.

삶의 방향성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나의 운명을 주변 사람들이 아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 인생의 방향 키를 쥐고 주체성 있게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일시적인 위안에 매달려 궁극적으로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변화를 시작하길 바랍니다.

 

- 생각이 많은 성격의 경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상상하며 과한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추는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 발생한 순간부터 그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갖가지 상황을 떠올리며 걱정을 하는 것이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미 결론까지 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실제 감당해야 할 크기의 걱정보다 훨씬 더 큰 걱정을 하니, 그만큼 심리적으로 더욱 큰 피로감을 느낍니다.

걱정을 통해 미리 대비하는 자세를 갖는 것은 분명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걱정을 위한 걱정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나에게 도움 될 것이 없습니다. 걱정이 시작되면 무작정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에 직면해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과감히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생각 자르기' 연습입니다. 생각의 바닷속에 빠져 있을 때는 너무 큰 망망대해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이미 일어난 것처럼 느껴지니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힘들더라도 나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걱정거리들 중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 것들과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앞서서 걱정하고 있는 것들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난 일에서부터 생각이 퍼져나가려 할 때, 그 순간 생각을 과감히 자르는 것이죠.

단순히 머릿속으로 하기보다는 글로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았는데 걱정하고 있는 것을 구분해보세요. 그리고 일어난 일 중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눠보세요. 모든 작업을 마친 뒤에 현재 일어난 일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것,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내려놓고 항복하고 상황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 이것이 너무 많은 걱정에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걱정은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주관하는 파페츠 회로가 자극된 결과, 생각이 꼬리에 고리를 물면서 눈두덩처럼 불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는 이성과 논리의 뇌, 실행의 뇌인 전두엽을 자극함으로써 차단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운동, 주변 정리, 필기, 청소 등과 같이 간단한 것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피드백을 얻으면 전두엽은 자연스럽게 자극됩니다. 이를 통해 파페츠 회로의 활성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입니다. 다른 사람의 관심에 따라 기분이 좌우된다는 것은 나의 감정 상태의 스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거든요. 나의 기분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인생의 주체는 자신이 돼야 합니다. 즉 그런 성향이라 할지라도 감정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인생의 주체는 자신이 돼야 합니다. 즉 그런 성향이라 할지라도 감정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매슬로의 인간의 욕구 5단계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욕구는 상대적으로 채우기 쉽습니다. 인정 욕구도 그중 하나죠.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곳은 자아실현이라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인생을 결정할 키를 넘겨주면 결코 자아실현은 이룰 수 없습니다.

 

- 우울증은 쉽게 말해서 과거에 내가 자주 써오던, 내 자아를 지킬 수 있었던 방어기제를 어느 순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는 의미입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새로운 방어기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정확히 이야기하면 방법조차 모르겠고 효능도 잘 이해되지 않는 방어기제 혹은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방식이 바로 효과를 보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상담입니다. 나에게 원래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문제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때, 새로운 대처 방식이 필요할 때, 우리는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대처해왔던 방어기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삶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은 무기가 아니게 되었음을 인지하고, 전문가와 함께 새로운 무기를 찾고 개발해나가는 과정을 밟아가야 합니다.

 

- 가족이라고 반드시 얼굴을 맞대고 자주 보고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견딜 힘이 생길 때까지는 거리를 두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가족과 장시간 함께 지내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자주 얼굴은 보고 지내되, 그 시간은 한두 시간으로 짧게 두는 방법을 취해 보세요. 대신 그로부터 오는 죄책감은 스스로 감당해야겠죠.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그만큼 상대의 언행으로부터 내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서적으로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죠. '개인으로서의 나'가 더욱 명확해지면 아버지도 하나의 개체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굳이 아버지와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의무감이나 죄책감도 내려놓을 수 있을 테고요.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면 그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입니다. 아버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아버지가 상당히 큰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아버지의 집에서 살고 있는 한, 아버지는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야속한 말이지만, 부모 자녀 사이에도 공짜는 없기 때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공짜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선 나를 단단하게 독립시킨 후, 아버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아버지와 잘 지내려는 부담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순간,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가 그냥 늙고 힘없는 불쌍한 남자로 보일 것입니다.

 

- 누군가 나의 인생을 함부로 속단하거나 헤집어놓을 수 없게 하려면 그들의 사랑과 안락함 또한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갖게 되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견뎌내야 합니다.

 

- 사람은 상실 앞에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다섯 가지 반응을 합니다. 이는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다시 역행하거나 반복되기도 하는데요. 이때 상실한 대상을 아는 주변 사람들과 기억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이를 이야기하기 꺼려 합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혼자 죽음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하죠. 하지만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하고 남은 가족 구성원들 간에는 오해나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커집니다. 함께 모여서 살아생전 함께 나눴던 추억들을 공유할 때 그 죽음은 조금씩 받아들여집니다.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처럼 함께 생활하던 누군가를 잃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픔과 함께 죄책감을 느낍니다. 좀 더 잘 보살폈더라면, 건강에 신경을 써줬더라면, 그때 잘못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죄책감이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이는 정상적인 애도 반응 중의 하나이고 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합니다.

이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더 큰 죄책감을 불러올 뿐입니다. 남은 가족 구성원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정서적으로 지지 받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가족 구성원 간에 이야기하기가 힘들다거나, 홀로 남겨졌을 때는 처음 보는 사이라도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스스로를 환기시키고 죽음을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합니다.

 

- 죽음은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삶의 한 부분이고,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상실한 이상 죄책감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책한들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죄책감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너무 함몰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시간을 잘 견디고 나면 사람의 죽음에 대해 좀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 영화에서는 장례식 대신 파티를 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니 슬퍼하기보다 잘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겠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외국에서는 돌아가신 분의 사진이나 영상을 함께 보며 생전의 추억을 나누는 장례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는 죽음을 원통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탓에 엄숙하고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곡을 하던 문화도 있었죠.

사람이 죽음을 이해하는 나이는 10세라고 합니다.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죽음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례문화 개선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이겠죠.

상실한 대상을 안타깝게 기려주는 마음에 더해, 행복했던 추억을 웃으며 기억해 주는 것은 남겨진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말 중요한 과정입니다. 떠나가는 사람은 나 때문에 너무 슬프지 않길, 다시 웃으며 살아주길 누구보다 바랄 테니까요.

 

- 스스로를 평생 괜찮은 척, 밝은 척만 해오고 살았다고 묘사한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음에 상처를 받았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주로 혼자 해결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이를 나누기보다는 괜찮은 척하면서 누군가에게 불편한 감정이나 걱정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면서 살아왔을 가능성도 큽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밝은 모습의 나만 보여주는 것이 상대를 위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내가 진짜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밝은 모습을 칭찬받아도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이 당연하죠. 실제의 나는 밝기만 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더 나아가 꾸며냈다고 생각한 나를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도 정말 나를 향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 테고요.

슬픔을 나누거나 함께 고민해 본 경험이 적으면, 상대에게 그런 행동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에 큰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고민을 나눈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을 오히려 내가 더 걱정하게 되죠 또 밝은 에너지를 가진 내가 아닌, 부정적인 나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상대가 실망하거나 나를 다르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돌아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길 원합니다. 어린아이들만 봐도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 칭찬 스티커와 같은 보상에 정말 기뻐하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에만 너무 귀 기울일 경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정적인 내면은 외면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 평소에 낯설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처음의 열정과 달리 꾸준히 지속하지 못하는 자유분방한 성향의 경우 정해진 규정에 얽매이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만큼 한 회사에 장기근속하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겠죠. 이 경우 돈이나 내면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 또한 어려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위험에 예민하고 이를 회피하는 성향까지 있다면 내면에서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한 마디로 내면의 불안감이 높은 것이죠. 그러니 과감하게 이직을 하지도 못하고 혹여 이직을 했다고 해도 무기력감을 주기적으로 또 느끼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환경이나 주변 사람을 바꾸는 것은 인생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것들입니다. 이직이 그 예입니다. 이직을 하는 것은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이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이직하는 것은 무기력증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대까지는 장기적인 계획 없이도 그리 불안해하거나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30~40대가 넘어가면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차 커지죠. 현재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가장 선명하고 확실한 답인 것 같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면 막막한 것입니다. 그 불안이 축척돼 무기력해질 수 있고요.

 

-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경우 정작 자신의 감정은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에 중점을 두다 보니 오히려 나의 내면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 경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위해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 누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때문에 평소에는 감정 조절을 잘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갑자기 관계를 끊어버리는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외에도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수동 공격을 보이거나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경우도 있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향임에도 그때그때 풀지 못하니 쌓고 쌓다 결국 한꺼번에 분출하는 것입니다. 결코 건강한 인간관계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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