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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미니멀리스트 붓다의 정리 법 (레기나 퇴터 저 / 출판사 생각의 날개)

by hyeranKIM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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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 땐 새로운 것에도 금방 마음을 연다. 낯선 사람하고도 쉽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오래전부터 꼭 듣고 싶었던 강좌도 시간이 없어 취소하기 일쑤고 친구와의 만남도 페이스북으로 대체하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휴가는 특별한 시간이다. 지금 이곳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 과거를 떠올릴 필요도, 미래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 지금 이 순간 관심이 가는 것, 점심엔 무엇을 먹을지, 오늘 저녁엔 무얼 할지만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데 우리는 일상의 하루하루를 휴가처럼 살지 않는 것일까? 하루하루가 휴가 같을 수는 없을까?

 

- 주의력과 공감, 달리 말해 '깨어있기'와 '연민'은 불교 교리의 핵심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면,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고 자신과 주변 환경, 주변 사람들과 함께 느끼면서 매 순간 온전히 그 순간을 산다는 뜻이다. 붓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결국 우리 모두의 바람은 행복하고 충만한 삶이며, 불교의 지혜는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 현재성을 잃지 않는다.

 

- 우리의 생각과 달리 우리를 에워싼 많은 것들이 실은 혼란과 의존, 불안을 불러올 뿐이다. 명품 백과 유명 디자이너의 재킷, 큰 외제 자동차는 부와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떨어진 자존감과 유약한 성격의 증거이다. 그 많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빼곡한 약속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 악순환의 사슬이 끊어질까 봐 두려워 벌벌 떤다. 있는 물건들을 버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생활을 즐겁게, 편리하게 만들어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자꾸만 물건을 사들인다. 결국 더 많은 자리와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더 많은 업무를 맡고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한다.

 

- "가진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행복은 커진다!"

 

- 붓다는 우리가 항상 불만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산다. 언제 어디를 가도 항상 뭔가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다. 장난감이 있어도 금방 싫증을 내고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탐낸다. 싱글이면 결혼이 하고 싶고, 결혼을 하면 파트너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직장이 없을 땐 일만 할 수 있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했다가 막상 직장을 구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못 살겠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정작 영원한 행복을 가로막는 그 불만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유 없는 변덕 때문일 수도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느낌 때문일 수도 있으며 그냥 절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쉬지 않고 욕망과 충족, 행복과 절망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들기 위해 기분 전환을 하고 오락거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 무엇도 행복을 오래 붙잡아두지는 못한다. 행복은 무상하고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것이 실제 우리의 현실이라고 붓다는 말씀하셨다. 그것이 사성제인 첫째인 고성제이다.

자, 그럼 그 불만과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일까? 붓다는 우리의 불만이 세 가지 독, 즉 탐진치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탐이란 탐욕을 말하며 진이랑 화를 말하며 치란 어리석음을 뜻한다(사성제의 두 번째인 집성제). 아름다운 물건, 멋진 경험, 좋은 기분, 긍정적 감정이 지속되는 못한다는, 다시 말해 무상하다는 사실은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것들에 집착하고 그것을 잃게 되면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 그것들이 늘 갈망하는 것을 주지 못하기에 실망하고 절망하고 맹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그 원인을 깨닫고 독, 즉 시기심과 권력욕, 끝없는 비교와 불신, 의혹이 왜 생기는지 안다면 그 독을 해독할 수 있을 것이고 불만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사성제의 세 번째인 멸성제). 우리를 그 경지에 이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팔정도이다. 팔정도란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이라는 뜻으로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집중을 말한다. 이것은 계율, 선정, 지혜의 삼학, 다시 말해 계율을 지키고 명상을 통해 사유를 깊이 하여 마침내 지혜를 깨닫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사성제의 네 번째인 도정제). 이것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불만을 잠재우고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 불교의 기본 교리

사성제: 사성제란 네 가지 높은 깨달음이란 뜻으로,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말한다.

1. 고: 인생은 괴로움이다. 현실 세계는 괴롭다. 여기서 괴롭다는 것은 육체적 괴로움뿐만 아니라 심리적 괴로움, 불안함, 불편함, 부조화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온갖 불만을 다 포함한다고 생각하며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은 크게 8가지이다. 무엇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근본적인 괴로움으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가 있겠다. 또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애별리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원증회고), 얻고자 한 것을 얻지 못한 괴로움(구불득고), 자기에게 집착하는 괴로움(오취온고)도 있다. 이를 두고 인생의 여덟 가지 괴로움(인생팔고)이라고 한다.

2. 집: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이다. 탐하고 욕망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

3. 멸: 마음을 비우면 괴로움의 원인이 사라지고 괴로움도 사라진다. '멸'이란 소멸을 뜻하며 '고, 즉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이다.

4. 도: 길 또는 방법을 말한다.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즉 열반에 이르는 방법이다.

 

- 정신적 만족의 문을 여는 최고의 열쇠는 '공감'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연민'이라고 부른다. 연민이란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며, 상대의 고통을 내 것인 양 나를 잊고 완전히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연민이란 과도한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 "남을 도와라." 부처는 말한다. "도울 수 없다면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마라." 이 말을 우리의 소비 형태에 옮겨 적용하면 생각 없는 '과소비를 줄이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변 사람,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동적으로 보다 깨인 정신으로 일상생활에 임할 것이고 주의 깊게 세상을 살피게 될 것이다.

 

- 당신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청소와 비우기 비결 역시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아는 것이요, 또 하나는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 일단 당신이 가진 물건을 네 가지 종류로 나누어보자. 사성제를 따서 '사서함'이라 부르자. 구할 수 있으면 이사용 박스 네 개를 마련한다. 없으면 집에 있는 쓰레기통 네 개로도 충분하다.

그것에 번호를 붙이자. 그림 재주가 있으면 예쁜 그림을 그려 붙여도 좋다. 1번 박스는 '보관용', 2번 박스는 '보관하되 조용히!', 3번 박스는 원하는 사람에게 '나눠줄 물건', 4번 박스는 '당장 갖다 버려!'

1번 박스에는 정말로 중요한 물건, 매일 쓰는 물건, 꼭 필요한 물건을 담는다. (중요한 서류, 노트북, 스탠드, 볼펜, 충전기, 주전자 등)

2번 박스에는 매일 쓰지는 않지만 반드시 보관해두어야 하는 물건을 담는다. (부동산 계약서, 보험증서, 구두약, 전기 그릴 등)

3번 박스에는 첫 번째 박스에도 두 번째 박스에도 해당되지 않는 물건들을 담는다. 기능은 정상이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 그리고 앞으로도 괜히 먼지만 잡아먹을 것 같은 물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버리자니 너무 아깝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팔거나 선물로 준다. (오래 입은 재킷, 책, 모자, DVD, 안 쓰는 휴대전화, 토스트, 남는 식기, 가구 등)

4번 박스에는 당신은 물론이고 남들도 쓸 수 없는 물건들을 담는다. 거치적거리기만 하는 물건들, 이미 작동이 안 되거나 너무 낡아서 물건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이에 해당한다. (낡은 레코드플레이어, 이가 나간 도자기, 찌그러진 가구, 빛바랜 티셔츠 등) 이 박스에 든 것들은 남김없이 갖다 버려야 한다. 최대한 빨리!

 

- 비우기를 무사히 끝내고 각자의 '행복한 양'에 도달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어쩌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버리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몇 가지 간단한 규칙만 알면 큰 도움이 된다.

첫째, 모든 물건에 자리를 정해둔다.

둘째, 쓰고 나면 반드시 제자리에 놓는다. 가위를 쓰고 나면 즉각 해당 서랍에 집어넣는 식이다.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이 5초의 시간이 물건을 찾아 온 집안을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해 다시 구입하는 사태를 막아준다.

셋째, 새 물건은 집에 있는 헌 물건이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만 구입한다. 물건을 사기 전에는 반드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수리를 할 수 없는지, 교환은 안 되는지 빌릴 수는 없는지 따져보자. 정말로 다른 대안이 없을 때 그때 사도 늦지 않다.

넷째, 물건은 양이나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최대한 오래 쓸 수 있다.

다섯째, 어떤 물건에 꽂혀서 그 물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거든 잠시 거리를 두 자. 그 '욕망의 대상'을 대기 명단에 올린 후 하룻밤을 자는 거다. 그래야 충동구매를 피할 수 있고 그 물건이 정말로 필요한지 점검할 수 있다. 나는 그럴 때 그 물건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그리고 한 달을 기다린 후 구매를 할지 말지 결정한다. 대부분은 그것이 거기 들어 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그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은 극소수이다.

여섯째, 쇼핑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처럼 시내를 산책하고 싶을 땐 신용카드를 집에 두고 나가자. 대신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현금만 넣어가면 도심 산책도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여가선용이 될 수 있다. 배가 고픈 상태로는 나가지 마라. 그리고 모든 물건을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하라. 가게는 창의적 디자인의 박물관이다. 또 물건을 살필 때는 그 제품의 가격과 품질이 어떤 제작 조건에서 탄생한 것인지도 살펴라. 항상 비판적 시각을 잊지 말고 쇼핑 목록을 반드시 적어나가라. 그래야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왜 여기에 왔는지 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거절을 배워라. 가게들은 온갖 할인과 추가 서비스, 세일로 당신을 유혹한다. 이참에 자신의 쇼핑 습관을 총체적으로 다시 한번 점검해보는 것도 좋겠다. 대체 왜 나는 물건을 사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 붓다는 삶을 굴러가는 바퀴에 비유했다. 우리의 일상은 그 바퀴 중에서도 가장 바깥쪽, 그러니까 제일 빨리 돌아가는 곳이다. 그러니 우리 삶이 어지럽지 않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이 바깥쪽을 떠나 바퀴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휴식이 존재하며, 그곳으로 가는 길이 곧 명상이다. '고요 속에 힘이 있다'라고 하지 않던가. 붓다는 그 말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다.

고요함을 찾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요가를 해도 좋고, 티베트 5식 요가를 해도 좋다.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걸어도 될 것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을 해도 좋다. 아니면 조용히 차를 한 잔 마셔도 되고 자율 훈련법을 해보아도 효과가 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는 오직 당신의 몫이다. 멍하니 딴 생각에 빠지지 말고 정신을 한곳에 집중하고 긴장을 푼다면 마음은 안정되고 몸은 건강해지며 생각은 지혜로운 판단을 낳는다. 해결책은 습관처럼 굳은 생각을 버릴 때 나올 수 있다. 두려움과 장애물은 깨어있어야만 넘을 수 있다. 진지한 고민과 숙고를 거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후회 없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겠는가? 그러자면 시간과 인내, 무엇보다 고요한 마음이 필요하다.

버리기란 한 편으로는 허용한다는 뜻이다. 만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식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해놓고 오늘 또다시 마트에서 초콜릿을 샀다면 무턱대로 자신의 행동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입이 심심해서 초콜릿을 집었는지 배가 고픈 상태에서 마트에 간 것은 아닌지, 가기 직전에 초콜릿 광고를 본 것은 아닌지 그 원인을 곰곰이 따져본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원인을 분석하여 그릇된 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책임이 있다.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고,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그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다. 학교, 직장, 커리어를 결정하던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은가? 그 결정의 결과는 우리 행위의 결과, 우리의 시각, 우리의 내적 동기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래서 불교에선 '인과'를 이야기한다. 친절한 동료들, 합리적인 상사, 유쾌한 고객 같은 외부 상황은 당연히 개인의 행복과 만족에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훨씬 더 많이 생긴다. 그럴 때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몫이다. 계속 짜증을 내고 모욕감을 느끼고 절망을 주변 사람들에게 뿜어댈 수도 있다. 혹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상황을 바라볼 수도 있다.

깨어있기란 주변의 좋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도 포함된다. 과연 우리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가? 지금의 일자리에 감사하는가? 무사히 끝마친 프로젝트와 도움을 준 친절한 동료에게 감사하는가? 아니면 그건 까맣게 잊고 눈앞의 불평불만만 보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당연한 것을 다시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과의 비교는 시기심을 유발하여 정말로 감사해야 할 것들에 눈길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 소통 심리학은 모든 사람에게 네 개의 귀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진술을 네 개의 다른 측면에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똑같은 말도 어떤 사람은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혀 무심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 말을 누가 했느냐, 어떻게 했느냐도 중요하다. 귀가 네 개이다 보니 오해를 할 위험도 네 배 더 커진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똑같은 말도 무려 네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순수한 정보로, 호소로, 자신의 심경고백으로, 개인적인 관계로... 예를 들어 상사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자.

"자네 책상에는 서류가 산더미구먼."

이제 당신은 고민에 빠진다. 저 말은 나에 대한 비난인가? 지적인가? 요구인가?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자기가 오늘 아침에 일을 잔뜩 맡겨놓고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첫 번째 귀는 순수한 정보를 듣는다. (서류가 쌓여있다)

두 번째 귀는 상사의 심경고백을 듣는다. (저렇게 쌓여 있으니 보기가 안 좋군)

세 번째 귀는 우리 안의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서류가 쌓여 있는 걸 보니 자네는 굼벵이야)

네 번째 귀는 우리를 향한 호소다. (서류를 처리해 주면 좋겠어)

 

먼저 무슨 말을 듣건 첫 번째 귀(정보)로 듣는다. 그 메시지의 순수 객관적 정보부터 걸러내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투덜이 상사의 말이라면 네 번째 귀(호소)를 동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래도 상사의 호소가 있으면 업무를 더 빨리 처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세 번째 귀(관계)는 최대한 닫아버리는 것이 좋다. 그러면 어떤 말이건 훨씬 더 여유 있게 반응할 수 있다. 설사 비난이 들려오더라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니 그 말에 상처를 받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 괴로움의 원인인 탐진치의 삼독은 물질적 욕망에 국한되지 않고 소중한 여가시간까지 좀먹는다. 사성제의 진리를 여가 시간에 적용해본다면, 그 시작은 제아무리 많은 자유 시간과 긴 주말이 주어진다 해도 도무지 불만투성이인 우리의 마음이다.

문제는 자신에게 거는 과도한 기대에 있다. 출세도 해야 하고 파트너와도 화목해야 하며 친구들과도 우정을 쌓아야 한다. 희망의 리스트는 한없이 길다.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균형을 버리고 흔들리는 줄타기도 감수해야 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괴롭다. 왜 그런지 그 원인은 명확하다. 자신을 법정에 세우고 가장 냉혹한 판결을 내리는 우리 자신 때문이다.

완벽주의와 과도한 기대는 우리를 점점 더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우리는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탐), 진짜와 가짜의 행복을 구분하지 못한다(치). 이게 있으면, 저걸 가지면 정말 행복할 텐데라고 착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가지고 나면 이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모든 강박과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여가마저 다시금 기대와 완벽주의의 포로가 되고 만다. 대체 왜 우리는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이렇게 멀어졌을까?

우리의 하루는 같다. 모든 사람의 시간은 하루 24시간이다. 그중에서 대개는 8시간을 자고 8시간을 일하며 8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8시간이라니, 따지고 보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농사도 짓고 사람도 만나야 한다. 물론 하릴없이 보내거나 일을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빼고 나면 그리 많은 시간이 남는 것은 아니다. 사성제의 네 번째 진리는 우리에게 팔 정도를 가르친다. 앞에서 보았듯이 지혜와 명상, 올바른 행동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그 길에 올라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 조깅을 하면서 굳이 음악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온 감각을 열어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들이자. 멋진 일몰을 반드시 사진으로 붙잡아둘 필요가 어디 있으며 기차 여행 내내 잡지만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 까닭은 또 무엇인가? TV는 특별한 날에만 보자. 예를 들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던가, 정말 기분이 울적하거나 감기가 걸려 꼼짝도 못 할 때 그럴 때만 TV에서 위안을 찾는 것이다.

요즘 나는 밖으로 나갈 때 휴대전화를 집에 둔다. 나랑 만나는 친구들도 휴대전화에 신경을 뺏기지 않고 온전히 대화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게임을 하기도 한다. 모두 휴대전화를 탁자 한가운데다 두고 제일 먼저 그걸 쳐다보는 사람이 커피값을 내는 거다. 재미도 있고 효과도 만점이다.

페이스북 친구도 정리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꼭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지만 평생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이번 여름엔 어디로 떠날지 알아서 뭐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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