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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동급생 (프레드 울만 저 / 출판사 열린책들)

by hyeranKIM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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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있는 소년들은 때때로 천진무구함을 심신의 빛나는 순결함, 완전하고 이타적인 헌신을 향한 열정적인 충동과 결부시킨다. 그 단계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강렬함과 독특함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 정치는 어른인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수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 완전한 절망의 시기가 지난 뒤에는 강렬한 호기심으로 이끌렸다.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더 이상 삶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 가치 없으면서도 어떻게 해서인지 유일하게 가치 있는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인 것 같았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이 잘 안되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 나는 이스라엘을 위해 돈을 걷으러 왔던 시온주의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논쟁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시온주의를 혐오했다. 그 모든 생각이 아버지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였다. 2천 년이 지난 뒤에 와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탈리아인들이 로마 시대에 한때 독일을 점령했다는 이유로 독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런다면 결국 끝없이 많은 피를 흘리게 되고 유대인들은 아랍 세계 전체와 싸우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리고 또, 어쨌건 간에, 슈투트가르트 사람인 아버지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시온주의자가 히틀러를 입에 올리며 그 때문에 이 나라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냐고 묻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 아니오. 나는 내 독일을 알고 있소. 이건 일시적인 질병,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만 하면 바로 사라질 일종의 홍역 같은 거요. 당신 정말로 괴테와 실러, 칸트와 베토벤 같은 우리나라의 위인들이 이따위 쓰레기에 넘어갈 거라고 믿는 거요? 당신은 어떻게 감히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1만 2천 유대인들의 기억을 모욕하는 거요?>

그 시온주의자가 아버지를 <전형적인 동화된 자>라고 하자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되받았다. <그렇소, 나는 동화된 자 맞소. 그게 뭐가 잘못이라는 거요? 나는 독일과 나를 동일시하고 싶소. 나는 유대인들이 독일에 완전히 흡수되는 걸 분명히 더 선호할 거요. 그러는 게 독일에 항구적인 이익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오. 좀 의심이 들기는 해요. 내가 보기에는 유대인들이 자기네끼리 완전히 통합하지 않은 덕에 여전히 촉매 역할을 하면서 예전에 그래 왔던 것처럼 독일 문화를 풍요롭게 비옥하게 하고 있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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