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19
사람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황태자(내가 붙인 나의 별명) 인 선생님에게도 가슴 아픈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있다고 하면 의아해 한다.
"선생님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선생님은 전혀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전혀 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줄 알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의 외모가 좀(돈이) 있어 보이나 보지?"
"그게 아니라 선생님은 선생님이잖아요. 그렇담 아무런 문제도 없이 공부했을 것이고,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잘 받고 자랐을 것이고, 한 마디로 범생이로 자랐을 텐데 어떻게 우리 집 같은 콩가루 집안을 이해할까? 란 말이죠."
아이들은 마치 어른들, 특히 선생님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훌륭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도덕적으로 엄격한 선생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참아야 한다'란 말이라도 듣게 되면 다시는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2. P25~26
학교사회사업가로 있을 때 만난 아이들 중에서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였다. 아니 존경까지는 안 되더라도 '좋아한다'라고... 부모님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그리 많지 않다. 흔히 문제아, 날라리(난 이런 아이들이 참 좋다. 이들에게는 삶의 에너지와 용기가 있다.)라는 아이들에게 비치는 부모의 상은 미움의 대상을 넘어 '그냥 잊고 지내고 싶은 그런 존재, 나와의 상관이 없는 타인'으로 자리매김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사회사업을 공부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청소년인 학생들만이 아닌 대다수 성인들도 부모들과 해결되지 않는 심리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아마도 자녀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듣는 부모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모일 것이며, 자신의 부모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식들 또한 그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하며 부러운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 누군가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자신 있게
"네 있지요. 바로 저희 아버지이신걸요."
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내가 뒤늦게 우리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하자면 행복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내가 여기서 나의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청소년기에 가정환경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며 또한 이러한 청소년기의 사건이 평생 동안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환경 탓으로 만 돌리지 말고 내가 한 것처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고 '너희들과 같은 환경이었던 나는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라는 희망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3. P29
"윤군! 자네는 할 수 있어. 그리고 난 자네를 믿네!"
이런 말을 만날 때마다 하셨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듣기 싫고 거북했던지... 그러나 그러한 말은 나에게는 나중에 큰 힘이 되었다.
4. P35
중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참 많이 힘들었다.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가출하고 싶었고, 또한 가출 시도도 하였었다. 성적은 말할 것도 없이 떨어졌으며 주변의 모든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나의 이러한 변화에 의아해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잠시, 곧 '그러한 아이'라고 인식이 되면서 나는 모두의 관심사에서 점점 잊혀만 갔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의 존재가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나도 옛날의 나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옛날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 희망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저 녀석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만큼은 항상 나에게 '윤군! 자네는 할 수 있네.'라는 말로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셨었다. 그때 그 말은 정말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내가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5. P39
정말로 가장 힘든 것은 선생님의 불쾌감도 아니요, 수업시간에 혼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아는 학생이 없어서 외로운 것도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존재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의미를 찾고 내 존재를 혼자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고 외로운 일이었다.
6. P46~47
그런 미선이를 보면서 예전에 본 씨티 오브 조이 (City of joy)란 영화가 생각났다. 인도의 상류계급인이 최하계급인 크샤트리아인을 심하게 대하는 인권유린 현장을 본 영화의 주인공, 페트릭 스웨이지는 그 상류 계급인에게 항변하였다. 그 때 그 탐욕스러운 지배계급은 이렇게 말을 하였다.
"앉아 있는 닭에게 조그만 굴레를 목에 씌우면 스스로 일어나려다 목에 무언가가 눌리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일어나지 못하지요. 그러다 목의 굴레를 벗지면 어떨까요? 그래도 일어나지 못하지요. 일어나려는 생각이 아예 없는 거예요. 이들은 닭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돌봐주어야 하지요. 이들은 그러한 근성을 지니고 있단 말이오. 의존하는 근성을..."
7. P54
순간 참으로 교만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17년 동안 부모도 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없었는데, 어떻게 단 몇 번을 만나서 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학생이 가출을 하였는데 학생에 대한 걱정보다는 학교사회사업가로서 노력한 나에 대한 배신감을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엄청난 교만이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난 아이들을 만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은영이가 많이 걱정이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한동안 많은 방황을 하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난 어떠한 아이라도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는 결코 좋아졌다라고 말하지 않는 징크스를 갖게 되었고, 나의 노력으로 학생을 변화시키려는 어리석음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변화하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 P70
어떻게 해서라도 말을 해보려고 하였고 어떻게 해서라도 대화로 하려고 했던 내 방식이 얼마나 자기 위주였는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중학교 아이들에게는 중학생다운 방법이 더 유용할 것인데 어른처럼 위에서 지시하는 것, 말로 설득시키거나 납득시키는 것보다는 그들과 함께 느끼고 행동하면서 일깨워 주는 것 어째서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을 강하게 통제하려했을까?'
9. P123
"선생님! 이젠 전 자살하지 않을래요. 이건 선생님이 없애 주세요."라고 하면서 자살 계획서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지성이와 함께 그것을 불태웠다. 그리고 나서 건네는 선물이 있었다.
"지성아! 웬 선인장이니?"
"선생님! 선인장은 그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잖아요. 어느 누구도 선인장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든요. 그러나 선인장은 꽃을 피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선인장은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지요. 저는 선인장과 같아요. 언젠가 꽃을 피우게 되어 세상을 놀라게 해 줄 그런 선인장 말이에요. 선인장을 보면서 저를 생각해 주세요. 그 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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