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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 저 / 출판사 나무의 마음)

by hyeranKIM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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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과 함께 읽는 헌법 이야기. 우리는 보통 법이라고 하면, 우리를 통제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테두리 지어놓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김제동이 읽은 헌법은 그렇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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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20

- 제가 헌법 전문부터 시작해서 1조부터 39조까지 외우게 된 이유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왜 이거 아무도 우리한테 안 알려줬지?' '이거 내 것인데 왜 몰랐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좀 억울하고 분해서 저절로 외워진 것 같아요. 법이라고 하면 늘 우리를 통제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테두리 지어놓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헌법은 국민이라는 권력자와 그 자손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거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짜릿합니까.

이제라고 헌법이 법조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살아 움직이면 좋겠어요. 헌법은 우리의 권리를 명시해놓은 것이니까 국민 각자가 헌법 해석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헌법을 비롯해서 모든 법이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마치 귀한 예술 작품들이 부잣집 벽에 걸려 있듯이요. 헌법은 헌법재판소 안에 갇혀버리고 법은 법관들 사이에 갇혀, 법이 진짜 지켜줘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버렸어요. 그 거리를 좁히고 우리 생활 속에 좀 퍼졌으면 좋겠어요.

 

2. P23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3. P26

- 헌법을 읽어보면 우리 국민이 보통 '갑'도 아닌 '슈퍼 갑'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헌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권력자인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 적어놓은 법이더라고요. 헌법 중에서 국민이 지켜야 할 조항은 사실상 38조 납세의 의무, 39조 국방의 의무 정도예요. 나머지는 전부 국가 권한에 대해서 또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적어놓은 거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헌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이게 우리의 권리인지도 모르고 당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법은 늘 힘 있는 사람의 칼이었지, 힘없는 사람들의 지팡이였던 적이 없었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헌법은 힘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힘들고 지칠 때 딛고 건널 수 있는 디딤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헌법은 약자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인데, 지금까지 국가 권한 자들의 무기로 인식되었다면 지금부터는 우리들의 무기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4. P36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5. P42~45

- 저는 민주공화국을 그렇게 해석합니다. 민주공화국의 '공'은 '공동'할 때 '공共'자죠. '함께'입니다. '화和'는 뭘까요? '나무 목木'자 위에 점이 하나 찍혀 있어요. 벼를 보면, 벼가 서 있고 그 위에 쌀알이 달려 있죠? 목 자 위에 달린 것은 쌀알입니다. 그래서 '벼 화禾'입니다. 이것을 옆의 '입口'들이 같이 먹어요. 입들이 모여서 밥을 함께 먹는 것, 그것이 제가 해석하는 '공화共和'입니다.

 

- 그런데 밥을 같이 먹으면 화합이 될까요, 안 될까요? 됩니다. 밥을 어떤 놈이 혼자만 먹으면 화합이 안 되겠죠? 다시 말해서 일부 '특수 계급'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주인이 되어서, 어떻게 밥을 함께 먹을지 고민하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의 핵심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이니까 여러분은 다르게 정의를 내리셔도 됩니다. 공화국은 '왕이 없는 나라'라는 뜻도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왕이 통치해온 나라였잖아요. 그런데 언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을까요? 찾아보니까 상해 임시 정부 때부터였더라고요. 조선 말기의 국호였던 '대한 제국'에서 '제국帝國'을 '민국民國'으로 바꿨을 뿐인데 여기에 큰 차이가 숨어 있죠?

"이제부터는 왕이나 임금이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라 우리 국민 각자가 주인인 시대다." 이런 엄청난 선언인 거죠.

 

-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나라, 함께 더불어 사는 나라, 동등하게 공존하는 나라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6. P54~56

- 에드윈 캐머런이라는 분이 쓴 『헌법의 약속』이라는 책을 읽고, 그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인 그분에게 물어봤어요.

"제가 헌법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떻게 코미디언이 헌법에 대해 말할 수 있느냐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논리로 본다면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헌법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이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헌법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헌법은 오직 판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가들만 말할 수 있다는 주장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재판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캐머런 재판관이 정말 멋진 대답을 해주셨어요.

"저도 제동 씨 의견에 깊이 동감합니다. 다음에 또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남아공의 헌법재판관들이 제동 씨 생각이 옳다고 했다고 전해주세요. 몇몇 사람들이 그러한 고서점을 유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한 가지 이유는 지적 우월감 혹은 엘리트주의 때문이에요. 예컨대 천체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별을 볼 필요가 없다거나 기계공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동차를 운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죠. 매우 어리석은 논리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좀 더 악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권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법과 관련된 많은 논의들이 사실은 권력과도 깊은 관련이 있죠. 만약에 소수의 사람들만 법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규제한다면 국민을 통제하기가 쉬워집니다. 반면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헌법에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요구한다면 소수의 힘 있는 사람들로서는 성가시겠죠. 몇몇 사람들이 제동 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엘리트주의를 고수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권력을 갖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죠."

 

7. P59~60

- 헌법 37조 2항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 "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8. P70

- 드라마 「비밀의 숲」 마지막 회에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헌법이 있는 한 우리는 싸울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보수와 진보가 싸우더라도, 적어도 헌법에 기반을 두고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보수와 진보가 무조건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야구나 축구에 기본적인 룰이 있듯이, 그 룰 안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규칙을 정해놓고 치고받자는 거죠. 글러브를 끼자, 아무리 미워도 선수 머리 쪽으로 볼 던지며 야유하지 말자... 헌법에 기반을 두고 싸우면 언젠가 화해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너무 이상적인가요? 어쨌든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믿거든요.

 

9. P74~75

- 헌법 7조 1항에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공무원 보면, 특히 우리가 뽑은 선출직 공무원들을 보면 우리는 더욱더 어깨에 힘을 줘야 합니다. 쫄 필요가 없어요.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먼저 고개 숙이는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우리 책임지라고 세금으로 월급 주고 배지 달아주고 차 태워주고 비행기 태워주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가서 일 제대로 하라고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와서 보고해야 정상입니다. 억울해하고 분해하는 소리 들어주고 귀 열어놓으라고 세금 내는 것이지, 훈계나 변명 들으려고 세금 내는 게 아니니까요.

 

10. P83

- 2004년에 MBC 특집 방송을 촬영할 때 피천득 선생님을 모시고 서울대학교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선생님 휠체어를 밀고 들어갔는데, 결국 그게 선생님의 마지막 강연이 되었어요. 자리가 없으니까 학생들이 창문에 붙어서 어떻게든 선생님 말씀을 들으려 했고, 교수님들도 많이 왔어요. 그 강연 내용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학교에서 공사를 그만해라. 학교는 공사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학교에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없애라. 학교에는 차들이 아니라 학생들이 다녀야 한다. 강의실을 멋있게 지으려고 하지 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편하게 다닐지 고민해라. 그게 학교가 할 일이다."

 

11. P88

- 에드윈 캐머런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인데, 그분이 쓴 『헌법의 약속』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헌법은 기본 구조상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하며, 사회경제적 권력이 없는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라고 명한다. 이는 옳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는 입헌주의와 법치주의가 허울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2. P100

-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때, 그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지난겨울 우리가 광장에서 확인한 게 아닐까 싶어요.

 

13. P102

- 어떤 나라의 왕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옛이야기를 보면 어떤 나라에서 백성들이 임금을 끌어냈다는데, 그거 잘못된 것 아닙니까?"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어떤 나라의 임금이 끌어내려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백성을 어지럽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힌 한 인간을 끌어내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백성을 괴롭게 하면 더 이상 임금이 아닙니다."

 

14. P145

- 헌법재판소 결정문(96헌가 11) 중에 양심을 설명한 대목이 있더라고요. 읽고 감동받았어요.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실천함에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다."

 

15. P148~149

- 제가 "당신은 늘 옳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인간은 기본적인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고, 마음에 균형 작용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간혹 그런 균형 작용과 마음의 작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긴 해요. 그러나 그들도 나름대로 옳은 선택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그들 나름대로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선택일 테니까요. 행복하자고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그르다"라고 얘기할 생각이 없다는 거죠. 옳다. 그렇게 해라. 다만 그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요. 덧붙이자면,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옳음과 그름의 싸움이 아니래요. 그러면 벌써 끝났죠. 세상의 모든 싸움은 옮음과 옮음의 싸움이래요. 그들이 봤을 땐 그게 옳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자. 저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 P156

- 저보고 누가 그랬어요. "넌 새누리당이냐? 민주당이냐?"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난 무가당이다. 아무것도 나한테 첨가하지 마라!" "좌파냐? 우파냐?" 그래서 "나는 기분파다" 그랬어요.

 

17. P157

-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뭘까요? 나는 나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고,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반대할 권리도 있고, 찬성할 권리도 있고, 당신도 나의 생각에 반대할 권리도 있고 찬성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할지라도 누군가가 당신의 말 할 권리 자체를 빼앗으려 한다면, 기꺼이 당신 편에 서서 함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잖아요.

 

18. P160

-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19. P178~181

- 국가 정책의 기조는 크게 두 가지죠. 조세, 돈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거둘 것인가. 그다음에 재정. 걷은 돈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쓸 것인가. 조세는 많이 번 사람에게는 많이 걷고 적게 번 사람에게는 적게 걷어야 합니다. 재정은 그동안 기회를 적게 누린 사람에게는 기회를 좀 더 많이 주고, 상대적으로 기회를 많이 누린 사람에게는 재정을 적게 투입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세금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제가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요, 북유럽 사람들이 높은 세금을 감수하는 것은 자신이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여서 반드시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청렴하고 유능한 정부와 공무원들이 오랫동안 그런 실적을 남겨서 신뢰를 얻어낸 것이죠. 우리나라도 국민이 높은 세율을 감수하게 하려면, 먼저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어 국민에게 골고루 그 혜택을 돌려준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우리가 벌어들인 돈을, 국민들 돈을 마치 아이들 세뱃돈 취급하는 것 같아요. "이리 줘봐. 크면 돌려줄게." 그런데 커보면 그 돈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죠. 어디에 쓰는지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아요. 우리 부모님들이야 나쁜 의도를 가지고 아이한테 세배를 시키고 그 돈을 빼앗은 게 아니죠. 그런데 지금 조세와 재정 구조를 보면 거의 국민들 앵벌이 시키는 것 같거든요. 예산 구조로만 보면 말이죠. 우리가 낸 세금의 생로병사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차 고장 났을 때 보험사에 전화하면 내 위치가 바로 나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가 낸 세금이 지금 어디쯤에서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르신들에게 기초노령연금으로 월 20만 원씩 지급하는 것을 마치 국가에서 그냥 주는 것처럼, 정치인들이 선심 쓰는 것처럼 눈치 보게 만들면 조세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 땅에 공헌한 기여로 국가 재정이 만들어졌으니 맡아서 관리하다가 우리에게 돌려주는 것이지, 나라에서 그냥 주는 돈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나라에 맡겨놨던 돈을 되찾아오는 과정인 거죠.

 

20. P202~203

- 권오곤: 이 사람한테 최대한의 권리를 주고 공평하게 함으로써, 처벌을 할 때 '아, 저놈은 우리가 처벌할 수 있다' 이런 정당성이 오는 것 같아요. 조지 부시가 사담 후세인 잡겠다고 이라크에 쳐들어가서 무작정 조준해버리니까, 그게 과연 정당한 것이었느냐 하고 비판받는 거잖아요.

김제동: 그러니까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경우에도 마치 이걸 법관들이 재판할 생각이 없다는 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예를 들면 "야, 쟤는 무조건 죄 없는 걸로 생각하면, 그렇게 잘 해주면 그게 재판이 되겠어?" 이런 거죠. "저런 나쁜 놈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이 시작한다는 거야? 진짜 그러면 안 돼" 이런 건데. 사실은 지금 정당한 권위를 확보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려면 오히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상호보완에 있다는 거죠. 재판 과정에 있어서. 얘가 무죄라는 걸 추정했는데도 나쁜 놈이어야 끝까지 추적하고 조사하는 거니까.

권오곤: 제동 씨가 내공이 굉장히 강해요. 이런 시각은 내공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는 거예요.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게 서양에서 수백 년 동안 목숨을 바쳐서 깨달은 진리예요. 블랙스톤(Blackstone, 영국의 판사, 법률학자) 이했던 말인가. 형사소송법 교과서에 1번으로 나오는 내용이에요. 열 명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지 말게 하자.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 추정의 원칙(?)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우리는 아직 한 명이 잘못되더라도 열 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벌하는 게 좋다고 실무자들도 생각해요. 언론도 그렇고 여론도 그렇고, 그런 생각이 아직 보편적이죠.

김제동: 우리가 병원에 가거나 한의원 같은 데 가면 아마 만져주고, 배도 눌러봐주고, 등도 쓸어주고 하면서, 여기가 좀 막혔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네, 그렇게 말해주잖아요. 그 과정에서 이미 아픈 게 절반은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거든요. 저는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판결이 마치 우리 사회에 내리는 처방전같이, 물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피해자가 치유받고, 사회 구성원들도 치유받는 쪽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감정적이라고 하는데, 이게 피해자를 위해서 함께 울어주는 과정인 것 같아요.

 

21. P210~211

-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며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헌법 119조 2항에 나오는 경제민주화 조항입니다. 기업이 무조건 적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기업에게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도 좋아야 하는 거죠.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리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휴대전화도 살 것이고, 우리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청소기도 살 거잖아요? 우리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텔레비전도 사고, 우리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뭘 사 먹죠. 그런데 왜 우리를 경제 주체로 인정해주지 않는 걸까요? 왜 우리들 임금이 높아지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고, 우리에게 복지가 오는 것도 비용이고, 기업의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은 늘 투자라고 얘기하는 걸까요? 왜 우리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것은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22. P212

- "백성은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어집니다. 일정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괴팍하며 삿되고 과도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죄에 빠진 후에 쫓아가 형벌을 가한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로 사냥하는 것입니다."

맹자가 한 말이래요. 어느 책에서 봤어요. 국민의 생활에 있어 기본적인 수요는 충족시켜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제헌헌법 84조에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었어요. 모든 국민이 적어도 어떻게 먹고살지,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될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의 진짜 목표라는 것이죠. 그리고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발전. 이 두 가지를 충족할 때에만, 각인의 경제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제헌헌법의 목표입니다.

 

23. P237~239

- 건물 벽돌에 뭘 하나씩 새겨놨더라고요. 가만히 보니까 동판에 새겨놓은 것도 있고 학생들이 임의로 새겨놓은 것도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1870년부터 1905년까지 우리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셨던 메리 아주머니에게." 학생 식당에서 일하셨던 분을 기리는 거죠. 그리고 왕의 초상화 옆에 또 다른 그림이 있어서 "이건 누구냐?" 하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경비로 일하셨던 분이래요. 그분의 초상화를 학생들이 직접 그려서 걸어놓은 거예요. 저는 그 경비였던 분을 왕과 동등하게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고 우리가 살면서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로 대하는 그 태도와 문화가 참 부러웠어요.

예전에 프랑스에 갔더니 신축 공사장 한쪽 벽면 전체에 노동자분들의 사진이 붙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같으면 '안전제일' 이런 거 붙여놓는 자리에 나가요.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인 그분들의 사진을 붙인 거예요.

사진작가를 섭외해서 평소 일하시는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망원렌즈로 당기고 밑에서 올려 찍고 해서, 여기저기 기름때 묻은 모습인데도 진짜 멋있더라고요. 선글라스 끼고 용접하는 모습을 벽 전체에 마치 작품 전시하듯 걸어놓은 거예요. 그 밑에 적어둔 말이 더 멋졌어요.

"이 건물은 이분들이 만들고 계십니다."

이렇게 걸어두면 그분들이 그 건물을 허투루 만들까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 지나갈 때마다 얼마나 큰 자부심이 들겠어요. 그리고 그 밑에는 가족사진을 붙여놨더라고요.

"이분들의 아빠입니다."

"이 가족의 가장입니다."

자기 아이들 사진을 보고 일하러 들어가면서 그 건물을 대충 만들까요? 저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금전적인 대우고 중요하지만, 이런 것들이 심리적 복지고 대우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떻게 주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세계 여러 나라 헌법이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형식만 들여오고 정작 이런 문화와 철학은 들여오지 못한 게 참 아쉬워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좋은 게 많지만, 이런 거소 들여오면 참 좋을 텐데 싶었어요. 최저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어떤 시산을 받느냐도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시선을 만드는 게 누구일까요? 우리잖아요.

앞으로는 일하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라고 하면 우리 언니고 누나고 오빠고 형이고 동생이고 딸이고 아들이니까요.

교만과 비굴이 짝이고, 당당하고 겸손한 게 짝이라는 말,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러니까 판사를 보더라도 고개를 숙여 인사할 수 있고, 청소하시는 분을 보고도 똑같은 마음으로 인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4. P248~249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낸 알비 삭스의 책 『블루 드레스』를 보면, 포트엘리자베스 시 정부 사건이 나와요. 똑 부러지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지만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국가가 헌법에 기반을 두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백인 소유의 토지 위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온 극도로 빈곤한 사람들을 사전에 어떤 중재 절차 없이 강제로 이주시킨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가가 머리를 기대고 누울 만한 장소가 절실한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궁지로 내몰아 그들이 주변화되는 것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것은 그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품위를 통째로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국가가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그나마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제기한 최소한의 생존 요건에 대한 권리 주장이 거부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것을 조장한다면, 권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우리 헌법의 진정성은 큰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할 소지가 많고 잠정적으로 갈등의 요소가 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법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25. P252~253

- 사회가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시켜주고, 욕망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채우게 하고, 탐욕은 규제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욕구 충족도 못하는 상황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통해 일부 사람들만 욕망을 채우고, 그렇게 욕망을 채운 사람들이 탐욕까지 부리는데도 규제가 잘 안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열패감에 시달리고 사회 전체가 동력이 떨어지는 거죠. 부패가 척결돼야 하는 이유는 선량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짓밟기 때문이거든요. '이거 열심히 해도 안 되는구나.' '해봐야 소용없구나.' 재산권에 그런 단서를 달았던 것은 바로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이고, 설혹 그런 폐단이 생겼더라도 그걸 되돌리는 것이 헌법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헌법 전문에 나와 있으니까요.

 

26. P284

- 우리 엄마 박동은 여사, 비록 초등학교 졸업이지만 이 나라 망친 거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 씨 뿌려야 하는지 알고, 언제 접시 꺼내야 하는지 알고, 언제 뜨거운 물 부어야 하는지 알고, 언제 밥해야 하는지 알고, 언제 나무 때야 하는지 아는 걸, 철들었다고 하는 거죠. 자연의 철이 온몸에 깊숙이 드는 것이죠. 많이 배우지 못했더라도 이 공동체 사회에 해 끼치지 않고 살아가면서, 배고픈 사람 보면 먹이고 추운 사람 옷 입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진짜 필요한 사람 아닐까요?

 

27. P293

-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28. P297~298

- 각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거죠. 고통이나 아픔은 개별적입니다. 굉장히. 누구도 계량할 수 없는 것이죠. 각 개인의 개별성에 집중해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다. 그리고 그 개별적 상황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은 옳다. 그럴 수 있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 인간의 개별적인 마음은 '이건 개나리야, 이건 장미야' 하듯이 그렇게 규정지을 수 없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저는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각 인간의 개별적 마음에 집중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그게 제가 요즘 생각하는 사랑이에요.

 

29. P302~306

- 우리가 뽑은 심부름꾼, 우리가 자를 수 있다. 그걸 어려운 말로 '국민소환제'라고 하죠. 거기에 국회의원들만 법률안 내지 말고 우리도 낼 수 있다, 이런 거 포함되면 좋겠죠. 예를 들면 10만 명 이상이 원하면 법률안으로 채택하자, 아니면 최소한 심사 또는 심의라도 하자, 그런 걸 좀 어려운 말로 '국민 법률안 발의권'이라고 합니다. 헌법 40조를 보면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법을 좀 바꾸면 어떨까요? "입법권은 국민에게 속하고 국회가 행한다." 그렇게 국회의원들을 입법권을 보장하고, 국민의 참여권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그런 방향으로 국민 주권을 강화해나간다면, 그래서 결국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의 권한을 국민이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막기 위해 내각제를 한다, 분권적 대통령제를 한다, 이런 건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정신에 입각하면 어떻게 해도 되거든요.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우리의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수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우리의 목소리가 좀 더 반영되지 않을까요? 국회의원 수를 천 명 정도로 늘리면 어떨까요? 국회의원 수를 늘리고 예산은 동결하면, 불필요한 특권은 없어지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국회로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국민들이 부려먹기는 더 편해지고, 여러 이익집단들이 로비를 하기는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국회의원들도 고생하는 분은 엄청 고생하니까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좋겠어요. 고생하시는 국회의원들 응원도 해주고 그래야 그분들도 일할 맛이 나잖아요.

정동영 의원이 어느 인터뷰에서 덴마크 의외 얘기를 했어요. 덴마크 의회에 가서 고용노동위원회 위원들을 만났는데, 고용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부두 노동자 출신이더라는 거예요. 부위원장은 목수 출신이고, 위원들도 조선소 노동자, 금속 노동자, 간호사 등 블루칼라가 대부분이었대요. 그래서 정동영 의원이 "한국에는 국회의원이 300명인데, 그중 한 명이 용접공 노동자 출신이고 나머지는 다 엘리트"라고 얘기하니까 덴마크 의원이 되묻더래요. "그러면 당신네 나라에서는 노동 조건과 임금 문제 등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어떤 사람일까요? '엘리트들'이죠. 더욱이 그 용접공 출신 의원 한 명마저 이제 안 계시잖아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보면 변호사, 판사, 검사, 언론인, 교수 출신이 두드러지죠. 공무원, 기업 CEO도 많고요. 그런 전문적인 인력도 필요하지만, 국민 전체로 보면 그들의 비중은 극히 적은데 그들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건 비례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이 혜택받을 수 있게 비례성이 잘 발현되도록 선거법 개정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로 국회의원 수도 좀 늘려서 이제 나라 걱정은 그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좀 놀면 좋겠어요. 우리 국민들 특기가 어쩌다 국난 극복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왜 세비는 그쪽이 받고, 국난 극복은 우리가 해야 되냐고요.

 

정치에 대한 풍자와 비판과 함께 정치 혐오가 아닌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중요합니다. 근데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요,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 잘못하면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그리고 지방 정부의 경우에도 지역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거든요. 근데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우리가 내쫓을 수 없어요. 그들에게 입법권이 있기 때문에 그런 법을 아예 안 만들어요. 그러니까 개헌을 한다면 국민들이 그런 법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눈치 보고, 일 제대로 안 하면 언제든지 제명당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30. P307~308

- 김구 선생님이 『백범 일지』에서 '내가 원하는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더라고요.

"우리의 부력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가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이 말은 헌법 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부분을 잘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또 '내가 원하는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더라고요.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31. P316

- 삼학년 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천장에서 미숫가루 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 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를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32. P324~325

- 투투 대주교가 쓴 『용서 없이 미래 없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 국가 공권력으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이 확인된 이들에게 국가가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다음에 그 피해자들에게 이런 뜻을 전달했다는 거예요.

"당신이 엄청난 권리 침해를 당하셨음을 인정합니다. 그 무엇도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국가로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려 합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고통으로 받은 상처를 깨끗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배상금은 그 상처가 낫도록 돕고자 붓는 향유이고 연고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위원들은 '보상'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해요.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 자식을 잃은 유가족에게 보상할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국가가 일정한 액수를 지급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잘못을 사죄하고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상징적인 의미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국가 스스로 인정한 거죠. 이런 게 국가의 품격 아닐까요? 이 사회가 희생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죠. 국민 한 명 한 명에게 예우를 지키는 게 진짜 멋진 국가의 모습이 아닐까요? 공권력이 개인을 존중하고 개인이 공권력에 존경을 표하는, 바로 그런 것이 국가 아닐까요.

 

33. P327

- 진실화해위원회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심 가치는 '우분투'라고 해요. 우분투는 '모두 함께'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인데, 나라는 존재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전체에 속했을 때 비로소 존재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분노나 적개심, 복수심, 치열한 경쟁 같은 것은 자기 존재를 갉아먹는 것이고, 용서는 사실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가 살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가 살기 위한 방편이 되는 거죠.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함께 산다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용서해주고 맘 편히 살자는 거죠. 다만 용서를 받으려면 진실을 밝혀야 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 사람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34. P355~356

- 김제동: 우리는 좋은 집보다 민주주의를 더 열망합니다. 이것이 제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헌법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헌법이 작용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두 가지 질문이네요.

알비 삭스: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일단 헌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담대해질 것이며, 헌법도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헌법을 개정할 때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헌법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법률가가 되어보는 겁니다. 헌법은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읽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헌법의 주요 체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만약 변화가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만드는 작업과 같습니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 같습니다. 나무에 또 하나의 나이테가 추가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녀 손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기여한 것을 알면 기쁘고 자랑스럽겠지 하고 생각하면 뿌듯할 수도 있습니다. 헌법은 법률가들의 것이 아닙니다. 헌법은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무조건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헌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주장하고, 국가와 모든 이들에게 의미와 특질을 부여하는 것에 말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흑인과 백인은 결코 평화롭게 어우러져 함께 살았던 적이 없어요. 그러니 만약에 선동적인 정치가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민주주의는 아주 빠르게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민주주의는 매우 활기차고 굳건하며, 선거도 매우 공정하고 의미 있게 이뤄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쥐게 되면 그 권력을 남용합니다. 헌법은 과거에 자유를 위해 투쟁해온 사람들이 (권력을 얻은 뒤에도) 헌법에 기반하여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헌법에 대한 저와 제동 씨의 생각이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대한민국을 이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법의 중요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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