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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저 / 출판사 앤드)

by hyeranKIM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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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27년의 작가 혼을 불살라 일제의 강제징용 문제와 역사 왜곡을 고발한 소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의 독백이다. 살벌한 역사의 전쟁터에서 이제 막 귀향한 군인처럼 드디어 우리는 문학의 본령

www.aladin.co.kr

 

- 고단했던 삶을 살아온 어머니가 이제 홀로서기를 위해 집을 나가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탄식처럼 던지는 말은 '나에게 이제 남은 건 내 장례식밖에 없구나'라는 한마디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아들이 중얼거린다.

"엄마는 왜 40년을 앞당기고 그러세요."

엄마는 앞으로 40년은 더 살 거라는 그 아들을 향해, 아니 자기 자신을 향해, 아니 고단했던 지난날의 삶을 향해 어머니는 소리친다.

"난 뭐가 더 있을 줄 알았다!"

남은 인생에 뭐가 더 있을 줄 알았다는 그 한마디, 그건 내가 요즈음 생각하곤 하는 말이 아닌가. 아침에 눈을 떠 새가 지저귀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이 방, 저 방의 불을 끄면서 그 생각을 하지 않는가. 내일 아니면 내후년에는 뭔가 달라지고 뭔가가 더 있을 줄 알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스무 살의 청춘에는 마흔의 중년에는 그리고 노년이 되면 뭐가 더 있을 줄 알지 않았던가.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벌판도 다르지 않으리라. 남이 말하는 평가나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남의 눈이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도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을 대 모든 것은 거기서 이룩되고 그것으로 찬란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 '예술가에게 있어 외로움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작품이란 '작가가 얼마나 혼자였는가, 그 고독의 산물'이라고 말했었다. 멕시코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은 '예술은 외로움 그 자체'라고 했다.

 

-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언어가 있으므로, 나의 언어 자체가 달라져야 그 시대 그 사람들과 소통이 된다고 생각해. 현대인의 의식구조도 달라지니까, 그들의 언어를 찾아 그들과 대화하면서 내 그림도 표현이 더 강해지고 더 직접적이 되었다고나 할까."

 

- 인생은 짧은데 하루는 참 길었구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은 것이 아니었다. 되돌아보는 인생은 짧았다. '어느새'라는 말 그대로 그렇게 지나가버린 세월들이었다. 그러나 하루는 길었다. 얼마나 긴 슬픔이, 또 얼마나 긴 고통이 그 하루 안에 머물러 나를 힘들게 했던가. 인생은 짧지만 하루는 그렇게 길었던 것이다.

 

- 이 세상에 열려 있는 수많은 길 가운데 학문을 자신의 뜻으로 선택한 네게 아버지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다. 좀 더 쉬운 길, 현실적이고 목표나 과정이 좀 더 확실한 실사구시한 길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젊은이가 가야 할 길에 '쉬운 길'이란 없다는 것을 너도 알리라. 선택의 과정이란 어렵고 갈등 속에서 뒤채야 하는 날이겠지만, 내디딘 발걸음에는 뚜벅뚜벅 두려움이 없어야 한단다.

이제부터는 네가 살아가는 시간들 그 하나하나가 집적의 나날이 되기를 아버지는 바라고 있다. 어떤 발견이나 성취도 하루 저녁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나치 수용소에서 하룻밤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렸던 콜베 신부의 그것은 고통이었고 기도였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건 시인 바이런에게나 있었던 신화라고 생각해라. 작은 것들이, 하루하루의 성실히 쌓이고 모여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라는 '집적의 생활'에 눈뜨기 바란다. 이제부터는 그런 나날이 너의 걸음걸이가 되어야 한단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네가 지금 껴안고 있는 젊음은 자유 그것이란다. 자유란 가능성이고 미래의 약속이 아니겠니. 그것을 믿고 그 자유로 너 자신을 구속하기 바란다. 자유로 너 자신을 결박하기 바란다.

네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느 날 밤늦게 학교 도서관을 걸어 나올 때, 갑자기 자신의 영혼이 한 뼘쯤 키가 자란 것 같은 그런 '진리와 만나는 순간'을 갖게 되기 바란다고 했었지. 그런 순간들이 젊은 날의 켜마다에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훗날 뒤돌아보면 하찮은 깨달음이었다 할지라도 그런 시간들이 네 영혼의 나이테마다 알알이 박혀 있기를 기도한단다. 깊은 밤에 만나는 진리와 발견의 시간을.

네 동생은 '무슨 가훈이 이래요'라면서 웃어댔지만, 내가 어린 너희들에게 바랐던 것은 세 마디였다. '씩씩, 똑똑, 튼튼'하라는 거였어.

'씩씩'은 기상이었다. 큰 뜻과 고결한 이상을 가지라는 것이었어. '똑똑'이 지성이었다면 '튼튼'은 생활을 위한 건강한 몸이었다. 어떤 부모나 가질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이런 말을 너희에게 들려주면서, 평범한 것들 속에 더 깊은 진실이 담겨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자라는 너를 보면서 바랐던 것은 두 가지였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살고, '뜻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것이었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삶, 그리고 거기에 네 뜻이 실리기를 바랐던 거란다.

 

- 어느 날 때가 와서, 아들이 결혼을 하고 자신을 낳는다면 그때, 어쩐지 서글서글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며느리와 아들을 앉혀놓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이들이 크면 무엇을 하든 함께하거라. 함께 배낭을 메고 산에도 가고 낚시도 다니고 할 수 있었으면 많은 것을 함께해라. 함께하는 것, 그것이 사람을 키우는 일이란다. 아버지는 그걸 하지 못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며 살아라. 뜻을 가지고 살아라. 그렇게 말이나 하며 나는 너희들을 길렀다. 그러나 자식 기르는 일은 말이 아니더구나.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고 함께해라. 그것이 사랑의 시작임을 너희들이 다 자란 후에야, 나는 알았단다.'

 

- 무엇을 기른다는 것처럼 귀중한 일이 또 있을까. 나무를 기르고 꽃을 기르고 땅을 경작하는 일만이 아니다. 생명을 가꾸는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게 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이 땅 위에 무엇이 있겠는가. 사람이 태어나서 살며, 하고 가는 일 가운데 무엇을 기르는 것처럼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늘 믿어오지 않았던가.

 

- 선생님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나 아픔과 함께한다는 마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은, SK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지 않고, 애경유지의 식용유를 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애독자로서 작가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독자가 말하는 SK는 고문 사건 때 국군 보안사 사령관이었던 노태우와 사돈 관계의 기업이었고 애경유지는 당시 반정부 학생시위에 마구잡이로 뿌려대던 최루탄을 만들던 기업이었다. 군사정권에 고통을 당한 작가를 위해 그 군사정권에 유착된 기업의 물건을 쓰지 않는다는 독자, 나는 행복한 작가였다. 그런 분들이 내 독자였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작가였다.

 

-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내는 깻잎은 잠을 재우지 않는다고 한다. 대궁 하나에서 더 많은 깻잎을 따기 위해 24시간 촉수 높은 빛을 비닐하우스 안에 밝힌다고 한다. 이제는 깻잎마저 잠을 못 잔 것을 먹어야 하는 요즘에 이르렀다.

무얼 먹고살아야 하나, 무엇을 입고 지내야 하나. 어디에 머리를 누이고 고단한 하루를 쉴 것인가. 그러나 이제 우리를 위협하는 기층문화는 이렇게 의식주만이 아니다. '여기에 어떻게 오갈 것인가'라는 교통문제인 행이, '어떻게 자식을 길러낼 것인가'하는 교가 합쳐진다. 그랬던 것에 최근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하는 노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의 어깨를 짓누르며 힘들지 않게 하는 것이 없다. 의식주행교노만이 아니다. 거기에 여행을 가든 골프를 치든 필라테스를 다니든 즐겁게 놀고 운동을 해야 하는 유와 동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하나하나가 돈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정책과 사회문제로 연결되며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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