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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저 / 출판사 김영사)

by hyeranKIM 202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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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수많은 언론이 집중 조명한 어느 특수청소부의 에세이. 누군가 홀로 죽은 집,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집, 오물이나 동물 사체로 가득한 집…. 쉽사리 볼 수도, 치울 수 없는 곳을 청소하는 특수청

www.aladin.co.kr

 

- 두려움은 언제나 내 안에서 비롯되어 내 안으로 사라집니다. 한 번도 저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 이력이라곤 단 몇 줄뿐, 여백을 많이 남긴 이력서는 그녀가 짓는 풍부한 표정과 좋아하는 음식과 오랫동안 따라 부른 노래와 닮고 싶었던 사람과 사랑하는 친구의 옆모습에 대한 기억은 담아내지 못한다.

 

- 텐트 뒤에서 책 몇 권을 발견했다. 이 세상에 캠핑을 온 것처럼 실로 간단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그녀의 곁을 지켜준 책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참 소중한 너라서>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

<아주 조금 울었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모두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책이다. 서점에서 이 책들을 발견하고 집 혹은 집이라 불리는 캠핑장에서 읽기 위해 값을 치르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텐트 안 램프에 불을 밝히고 문장을 읽어나가며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군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했다면 스스로 삶을 저버리겠단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어느덧 서른을 맞이하고 소중한 '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끔은 울기도 하겠지만 행복한 시간 속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삶을 온전히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 합법의 울타리 안팎으로 흰 발과 검은 발을 한 발씩 담근 채 교묘히 넘나들며 채무자를 압박하는자들. 달리 생각해보면 가족은 연락을 끊어도 채권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셈이다.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

수십억 원대의 빚을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갚아나간다고 용기 있게 고백한 가수 출신의 방송인에게 채권자들이 건강보조식품을 보내주며 응원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이 복잡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때는 차라리 웃는 편이 나을까? 돌려받을 돈이 있는 자는 그 누구보다 빚진 자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 있길 바랄 것이다. 빚을 모조리 회수하는 그날까지.

 

- 가난하다고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그대가 현자라면 언제나 심각한 사람이 손해라는 것쯤은 깨달았으리라. 어차피 지갑이 홀쭉하나 배불러 터지나 지금 웃고 있다면 그 순간만은 행복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운명을 맞이한 순간까지 그는 죽을힘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다.

 

- 먹고사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에서 절대 도려낼 수 없는 가장 뿌리 깊고 본질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것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함께 먹고살려는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 밤은 청하지 않아도 기어이 찾아온다. 밝아오는 아침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하듯 어둠은 내가 살아 잇는 동안 단 하루의 유예도 없이 매일 밤 나를 방문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 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무심함에 질리고 때로는 그 변함없음에 안도한다. 그토록 장엄하고 공평 무사한 밤이 찾아오면 모든 생각이 작고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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