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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오늘을 산다는 것(김혜남 저 / 출판사 가나출판사)

by hyeranKIM 202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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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산다는 것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덧붙인 첫 번째 그림에세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충분히 즐기며 하루하루 꿈을 꾸며 사는 그녀의 일상, 고통과 절망 속에서 비로소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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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

길가 곳곳에 의자가 정겹게 놓여 있습니다. 고된 여행길에 지친 다리를 잠시 쉬고 숨 한 번 고르고 갈 수 있도록 사람들이 놓아둔 것입니다. 그런 의자이고 싶습니다. 크고 안락한 소파는 아니지만 삶의 여정에 길을 잃고 지친 사람들이 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생각을 고르고 다시금 방향을 찾아 길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작은 의자가 되고 싶습니다. 참, 의자 뒤에는 향기로운 장미를 많이 심어 두고요.

 

- 결혼

결혼은 약속입니다. 서로에 대한 약속, 앞으로 생길 가족에 대한 약속,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약속입니다. 앞으로 저 어린 부부 앞에 얼마나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 일들 앞에서 저들의 사랑이 얼마나 요동을 칠까요? 약속은 깨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약속입니다. 오늘의 사랑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작은 사랑이 되게 만들겠다는 굳은 약속입니다. 오늘의 신랑,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쌍입니다.

 

- 기도

매일매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매 순간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이것이 남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저의 욕심을 거두어 주소서. 내가 상처 주었던 모든 이에게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나에게 상처 주었던 모든 이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주소서. 나의 존재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웃음과 기쁨이 되게 하소서. 큰 능력은 없어도 그저 사람 사랑하는 능력만은 잃지 않게 하소서. 이 모든 기도를 매 순간 기억하게 하소서.

 

- 우리에겐 친구가 항상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생에서 친구가 특히 더 필요한 시기가 있으니 그것은 사춘기와 갱년기 이후입니다. 이 시기의 공통점은 바로 '가족 간의 유대가 느슨해지고 자기에게로 집중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이고 갱년기는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끝마치고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는 시기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친구를 찾습니다. 친구란 바로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며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한 발짝

사람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그러고 어떻게 사냐고요. 그럼 나는 되묻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그래도 살아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요.

때론 삶이 막막하고 앞이 안 보일 때도 있습니다.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수만은 없습니다. 그건 그 어둠과 고통 위에 머무는 것이니까요.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는 것, 그것이 답입니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면 어딘가 다른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 경청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가만히 듣고 있는 게 여러 얘기를 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환자는 자기의 얘기를 풀어놓고 재정리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경청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경청이란 단순히 듣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 말에 들어 있는 마음을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다음은 경청을 잘하는 방법입니다.

1. 듣는 것을 즐기세요.

2.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비판하려 하지 마세요.

3. 보디랭귀지에 더 주목하세요.

4. 때때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세요.

5. 배우기 위해서만 질문하세요.

 

- 겨울

겨울은 흰 눈으로 가을을 덮어 주고, 가을은 그 흰 눈 속에 제 색을 녹여 서서히 또 다른 계절과 합쳐지고 있습니다. 저 눈과 추위를 견딘 세상은 더 아름다운 색으로 봄을 맞이하겠지요. 그래서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고요. 인간의 욕심이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음은 흐름의 이치, 내어줌과 받아들임, 그리고 합일의 이치를 우리에게 보여 주려는 신의 무한한 자애로움인 듯합니다. 그 안에서 피는 아름다움도요. 우리 인간도 저 자연의 이치대로 흐르고 만나고 엎어 주고 내어주는 법을 배워야 할 텐데, 욕망에 마음 일부를 빼앗긴 대가로 이 고된 거스름의 여정을 때론 밟나 봅니다. 그런 우리의 무지함을 덮듯이 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 동행

외롭고 고달픈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누군가 나와 같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은 더 이상 외롭거나 겁나지 않은 것입니다. 목마르면 물을 나눠 마시고, 비가 오면 우산을 나눠 쓰고, 길을 잃으면 머리를 맞대고 길을 찾아볼 조력자가 내 옆에 함께 걷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행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구간, 한 시점을 함께 걷다 어느 시점이 되면 각자 갈 길이 갈라집니다. 그럼 우린 또 혼자가 되지요.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다른 동행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혼자 걸었다. 다른 누구와 함께 걸었다 하는 것이 인생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나와 지금 함께 걷는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순간의 모든 관계가 다 소중합니다. 그 순간 그 관계들이 모여 인생을 완성하게 되니까요. 지금 당신의 옆에서 같이 걷는 사람을 소중히 하십시오. 진정성만이 당신의 관계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내 마음의 방

세상사에 지치고 혼란스러울 때, 주위 사람들과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되고 두려워질 때, 마음속에 빈방을 하나 마련하여 그 안으로 잠시 숨어들어요. 그 방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방, 바로 나만의 방이랍니다. 우리는 모두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잠시 차 한 잔 마시며 창밖 풍경을 보면서 숨을 고르다 보면 내 마음속에 투영된 여러 장면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장면에 넋을 잃고 보다 보면 들끓던 감정들이 가라앉고 이해 안 되던 상황들이 어렴풋이 정리됨을 느낍니다. 안되면 잠시 기운을 차릴 시간을 갖고 다시 문을 열고 나가면 되죠.

 

- 과거의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

환자들과 면담할 때 마치 그들이 커다란 우주복을 입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느낌을 그려 보았습니다. 현실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주복으로 모든 것을 차단하지만 그 결과 우주복 안은 과거의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현재로부터 단절됩니다. 그의 산소통은 과거의 시간으로 가득 차서 그는 과거의 시간을 계속 마시면서 과거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들에게 과거의 트라우마는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 용서

긴 치료 후 한 환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용서받을 만한 사람이 못되어요. 그러나 그 미움 때문에 이제껏 제 인생을 파괴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를 위해서라도 그 미움을 떠나보내야겠어요."

그렇습니다. 용서란 떠나보냄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그 미움의 에너지는 결국 그 사람에게 집착하게 만들며 긍정적으로 써야 할 자신의 에너지를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붙들어 맺던 과거의 원한과 미움을 풀고 떠나보내는 것, 그것은 힘들지만 바로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매우 멋진 일입니다.

 

- 상처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말이죠. 상처 없는 무균실 같은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처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거든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 주는 삶은 존재하지도 또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결핍은 우리 인생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결핍을 어떻게 채우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장이라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치유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상처는 그것을 어떻게 이겨나갔느냐에 따라 삶의 훈장이 될 수도 있고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개가 진주를 품기 위해 조개는 계속 어떤 물질을 분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뭉쳐서 아름다운 진주가 됩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주는 상처를 최소화하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겠죠. 인생의 한 과정으로써 상처를 이해하고 상처받은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 냉소

냉소는 모든 것의 가치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냉소의 대가로 그는 얼음 위에서 홀로 선 채 추위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추위를 감추느라 애쓰면서 말이죠. 눈을 뜨고 내려오면 따뜻하고 꽃이 핀 들판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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