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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46

천 개의 밤, 어제의 달 (가쿠타 미츠요 저 / 출판사 티라미수더북) - 밤은 싫든 좋든 우리가 혼자임을 깨닫게 한다. 혼자라는 걸 깨달았을 때 맛보는 기분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느 때는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미래에 나쁜 일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 어느 때는 혼자서 어디까지나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묘하게 기운이 난다. 그리고 어느 때는 바로 전까지 함께 있던 사람이 진심으로 소중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기도 한다. 특히 번화가의 밤이 점점 밝아지는 것은, 아마도 그런 사실을 깨닫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라는 사실을 알 수 없도록, 도시는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나 네온사인으로 밤을 어딘가로 쫓아내려고 한다. 어두운 밤하늘을 부자연스러운 보라색으로 계속해서 물들인다. - 여행의 시작을 몸소 느끼게 하는 것은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 2021. 5. 20.
가장 단순한 것의 힘 (탁진현 저 / 출판사 홍익출판사) - 책을 삼(buy)에서 책을 삶(life)으로 소설 의 주인공 비블리는 광적인 책 수집광이다. 그는 아름다운 겉모양의 책을 수집하고 2000개의 명언을 외운다. 그런 그는 어느 날 눈길을 끄는 표지의 책 한 권을 훔치고 책으로 변화하는 기이한 체험을 한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삶으로 끌어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책에 흡수되어 갇혀버린다. 나는 책이 되어버린 주인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 사회 속 많은 이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방 한쪽 벽면에 책을 잔뜩 채워놓지만 정작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책을 읽지만 잠시의 위안거리로 삼을 뿐 책장을 덮자마자 잊고 구석에 방치한다. 명언을 줄줄 외우면서 옳은 말만 하고 글은 쓰지만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꽤 본다. 집.. 2021. 5. 17.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저 / 출판사 아날로그) - 노년에 관해 쓴 이 작은 책에는 귀중한 교훈이 많이 들어 있다. 가장 중요한 몇 가지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1. 훌륭한 노년은 젊을 때 시작된다. 키케로는 노년을 생산적이고 행복한 시기로 만들어주는 특성들을 젊어서부터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절제와 지혜, 명료한 사고 그리고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즐기는 자세. 이것들은 노년을 지탱해 주는 것이기에 젊은 시절부터 익혀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젊은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지기 더 어렵다. 2. 노년은 인생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일 수 있다. 내면을 잘 갈고닦으면 노년은 아주 즐거울 수 있다. 물론 불행한 노인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다. 키케로는 그들이 불행한 이유가 늙어서가 아니라 내면이 빈곤해서라고 말한다... 2021. 5. 16.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저 / 출판사 메이븐) -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모두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그 의연함에서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삶의 가치들을 배운 것이다. - 결혼 전 어느 늦은 밤, 술에 만취해서 나를 찾아온 녀석이 그랬다. "형, 있잖아. 오늘 우리 애인을 만났는데 감기 몸살에 얼굴이 반쪽이 됐더라. 열이 펄펄 끓는데 병원도 안 가고 그냥 참고만 있었대. 그 돈으로 나 생일 선물 사 주려고." 단칸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한 그들. 어려운 형편에 홀아버지까지 모시느라 허리가 휘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두 사람은 누구나 부러워할.. 2021. 5. 14.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악아 저 / 출판사 봄름) - 34년 차 며느리이자 인생 선배인 우리 엄마는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착한 며느리였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며느리 행동 강령을 몸소 실천하며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결혼생활 내내 애썼다. 그리고 이제 와 가슴 치며 그 시간을 후회한다. 사랑받기 위해 공들인 크고 작은 마음을 알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의미를 찾기 못한 노력이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 "그냥 참아." "네?" "이기지 말고 참아요. 본인만 참으면 모두가 다 행복해."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하다. 나만 참으면, 나만 참으면.... '참을 인 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는 대한민국 며느리로서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 참고 또 참으며 살겠.. 2021. 5. 9.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 (박진희 저 / 출판사 앤의서재) - 지금 생각해 보면 시에스타는 그들의 굳건한 약속이자 옳다고 믿는 가치관이었다. 그 마을에 누구 하나가 약속보다 '손님에게 얻는 이익'을 앞세웠다면,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질 시스템이었다. (아, 물론 아늑한 휴식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족의 기질이 시에스타를 끝내 구해낼 거지만.) - 아침에 알베르게에서 일어나면 조곤조곤 한국말이 들린다. "오늘 어디까지 갈 거야?" "오늘 몇 킬로미터 걸을 거야?" "거기 가면 늦게까지 문 여는 대형마트 있어?" 오랫동안 출판사 에디터로 살아온 나는, 그런 이야기가 들리면 피식 웃음이 났다. 매일 아침 업무회의에서 하던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반드시 해야 할 몫, 마쳐야 할 분량이 주어지고, 퇴근 무렵 업무 일지에 결과를 기록하고, 미처 다하지 못한.. 2021. 5. 6.